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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내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 놀라운 건 남편의 애인이 남자라는 사실.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힌 아내는 남편의 남자를 뒤쫓다가 폭언을 퍼붓는 대신 도리어 그와 격렬한 섹스를 나누는데….’
이렇게 몇 줄의 시놉시스만 봐도, 무척 구미가 당기는 영화 <욕망>. 전작들을 통해 감독의 스타일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섹스 장면’에 대한 기대를 품고 기자는 언론 시사장을 찾았다.
알쏭달쏭 황량 무비
영화가 상영되기 전, 무대 인사에는 김응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인 수아, 이동규, 안내상, 장소연이 참석했다. 김응수 감독은 “이 영화가 여러분들을 흠뻑 적셨으면 좋겠다.”는 다소 에로틱한 멘트를 날린 뒤, ‘우아하지만 역겨우며,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라고 자신의 영화를 소개했다.
<쁘아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필모그래피를 지닌 수아는 “오랜만에 영화가 개봉하니 떨린다.”는 간단한 인사말을 남겼고, 어디서 봤나 했더니 <와일드 카드>에서 퍽치기 무리 두목으로 출연했던 이동규는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오랜 시간 공들이고, 완성 후에도 많은 시간 공들인 이 영화가 드디어 시사를 하게 되니 설레고 긴장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딱 봐도, ‘이 남자가 남편의 애인역이군’이란 느낌을 강하게 던져주는 이동규는 상당히 여성스럽고 차분한 말투를 지닌 예쁘장한 배우.
극중에서 이동규를 훔쳐보는(?) 소녀로 등장하는 장소연은 “3년전 오디션을 볼때, HD 디지털 영화가 뭔지 몰라서, 그게 뭐냐고 물어봤다가 심사위원들이 황당하게 쳐다봤었다.”는 에피소드를 밝혔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면, <욕망>은 ‘한국 최초의 장편 HD 디지털 영화’. 이 ‘HD 디지털 영화’는 영화를 찍을 때, 러시필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촬영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즉각적으로 촬영과 조명, 미술, 배우들의 연기까지 확인하고 점검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양성애자 ‘남편’으로 등장하는 안내상은 이상스레 심드렁한 분위기가 흐르는 시사회장을 약간의 유머로 물들였다. “제가 권상우쯤 되면 박수와 함성이 크게 나올 텐데….”라는 멘트를 날렸던 것. 이어 “<욕망>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대사와 액션도 있고, 학수고대하던 베드신 장면도 있었던 영화”라며 “3개월 동안 리허설을 가졌지만, 현장에서는 리허설만큼의 연기가 나오지 않아 감독님께 많이 맞기도(?) 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그가 평가하는 <욕망>은 고집스럽고, 품위있는 영화.
자, 그렇다면 <욕망>은 정말 그런 영화일까. 제55회 로까르노 국제영화제, 제27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제20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 초청된 해외 영화제들만 해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라는 이 영화.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론 '글쎄올시다’다. 앞서 ‘섹스 장면’ 운운한 것은 반농담이었고, 오랜만에 괜찮은 ‘작가주의 영화’를 보게 되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유럽 영화 냄새가 풍기는 황량하고 세련된 화면들은 군데군데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스토리 연결이 안 되는 이 ‘초현실주의 영화’(감독의 표현에 의하면!)는 황당 그 자체.
지구에 툭 떨어진 우주인처럼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가 ‘☆◇♤X@'로 들려오기까지 하니 어쩌란 말인가. 그 어느 것에도 몰입하기 어려운, 이 스토리 ‘생략적인’ 영화는 관객들의 고도의 인내심과 유추력을 요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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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그러했으니, 기자는 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생각이 몹시 궁금했다. 영화가 끝난뒤, 득달같이 기자 간담회장으로 달려간 것은 물론이다. 기자 간담회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부에서는 ‘HD 디지털 영화’와 ‘온라인 상영’에 대한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고, 2부에서 비로소 감독과 배우들이 나와 <욕망>에 대한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기자 간담회 2부를 간추린 내용이다.
Q. 영화가 루이스 브뉴엘 감독 영화에서 유머를 뺀 듯한 느낌이 드는데?
A. 김응수: 이 영화는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다. 요즘 한국 영화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영화다. 이게 과연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우리가 봐야 할 종류의 영화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또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만들었다.
Q. 캐릭터 소개를 부탁드려요.
A. 수아: 남편의 애인과 모호한 삼각 관계에 빠지는 캐릭터인데…우울증 환자같기도 하구….(설명하기 굉장히 난감해 하며)아이, 정말 단적으로 제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기가 어렵거든요….
이동규: (참으로 차분하게) 수아와 안내상 두 분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애인의 아내에 대해 호기심, 질투심 이런 감정들도 있구요.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만, 결국엔 모두 버림을 받게 되는 역할입니다.
안내상: 남자를 사랑하는 남편 역할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남자 입술의 맛을 봤죠. (장내 웃음) 맨 정신으로는 하기 힘들어서 술을 마신 뒤 이 남자 저 남자한테 해 봤거든요. 해보니 괜찮더라구요. 근데 막상 영화를 찍을 때는 왠지 적극적으로 잘 안 되더라구요. 음…슬픈 인물인 것 같구요. 사회가 주는 규율이나 법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사회 안으로 편승해 들어오는 인물이죠. 처음에는 제가 주인공인 것 같았는데, 출연하는 비율면에서는 제가 제일 떨어집니다. (장내 웃음)
Q. 연기 지도를 어떻게 했는지?
A. 김응수: 시나리오 리딩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구요. 어떤 상황이나 행동이 벌어질 때, 배우들이 자신의 제일 솔직한 감정을 끌어내기를 원했어요. 이런 걸 표현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리허설이었구요.
안내상: 저희들은 장면들마다 결론적으로 이 연기가 맞는지, 틀린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감독님이 시키신대로 했고, 그 의도대로 움직였죠. 그만큼 감독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릭터 분석이랄지 연구가 별 의미가 없었어요. 그보단 내 속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이 연기가 맞나 안 맞나를 알 수 없는 것은 안타까웠어요. 예를 들어 베드신 장면에서 신음소리를 내면, 감독님이 여기선 신음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하시니….
이동규: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감독님이 좋아하시는 책, 비디오, 영화 등을 같이 보는 일을 했었거든요. 참, 감독님이 좋아하시는 책이 『떼레즈 데께루』인데요, 전 진짜 지루했었거든요. (웃음) 그렇게 감독님과 교감하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들로 접근해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맡은 역할이 ‘이반’이니까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는데요. 결국에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어떤 기자가 약간 민망해하며)저기요, 영화 속에 ‘따귀때리는 남자’가 도대체 누구에요?
A. 김응수: 저는 무척 쉽게 생각했는데, 그냥 그 남자는 ‘로사(수아)’를 따라다니는 스토커입니다. (웃음)
Q. 상징적인 장면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A. 김응수: ‘상징’을 담으려고 하진 않았는데…. 굳이 꼽는다면, 로사가 영화의 마지막에 흘리는 눈물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참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취재: 심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