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결합이란 희귀하다. 인간성을 바꿀 수는 없고, 그저 알 수 있을 뿐이다. 행복은 안감이 누더기가 된 자줏빛 외투이다." 이건 영국 작가 줄리안 반즈가 제시한 생활을 위한 격언이지만,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을 만든 앙팡테리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라면 이 말에 대뜸 제동을 걸 법하다. 근본적으로 사랑이란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양자의 '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것, 그리고 유혹의 기술을 밑천으로 벌이는 처절한 승부일 따름이다.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은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파워게임을 냉혹하면서 유머러스한 뻔뻔함으로 풀어간다. 사랑의 여러 요소들 중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물론 섹스.
<워터 드랍스....>는 파스빈더가 19세 때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모태가 모태인 만큼 연극적인 요소들이 다분하며, 전체는 몇 개의 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부유한 중산층의 냄새가 한 눈에도 묻어 나오는 말끔한 아파트가 영화의 무대. 강건한 외모에 중년의 연륜과 자신감을 함께 갖춘 50세 남자 레오폴드(베르나르 지로도)는 스무 살 청년 프란츠(말릭 지디)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남자랑 자본 적 있어?" 이어지는 프란츠의 대답. "실행해 본 적은 없지만 꿈꿔 본 적은 있어요." 눈빛이 교차하고,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침대로 향한다. 멋진 외모와 노련함, 경제능력이 어우러진 레오폴드의 유혹의 기술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
두 번 째 막에 이르러, 시간은 사건으로부터 몇 개월이 경과한 후다. 첫 만남 때 레오폴드의 유혹을 세련되게(스무 살 청년의 모습은 중년남자와 대비되며 어쩔 수 없이 순진한 느낌을 주지만,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가 순수함을 가장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받아들였던 프란츠는 어느 틈엔가 그의 '집사람'이 되어있다.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트한 숏팬츠 차림으로 집안을 오가며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온 레오폴드의 코트를 받아드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아찔한 위기감을 느낀다. 프란츠를 집사람으로 만든 '유혹자'가 바로 그런 종류의 안정감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측하는 탓.
아니나다를까 프란츠가 못마땅한 레오폴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댄다. 침대에서의 매력은 아직까지는 유효하지만, 그 외 생활에 프란츠가 개입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오디오 볼륨처럼 하찮은 일로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리는 레오폴드에게서 관객은 이제 코앞에 당도한 균열의 냄새를 맡는다. 사랑 받지 못함이 슬퍼 흐느끼는 프란츠. "덜 좋아하는 자가 권력을 얻는다"는 사랑의 냉혹한 공식을 대입하면, 역시 레오폴드의 압승이다. 그러나 전 여자친구 안나(뤼디빈 사니에르)가 아파트를 방문하면서 희생자였던 프란츠의 위치는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두 사람은 섹스를 나누고, 프란츠는 "행복이 뭘까"라고 읊조린다. 이어 레오폴드가 돌아오고 그의 전'부인'인 트랜스젠더 베라(안나 레빈)까지 가세하면서 네 사람-게임 식으로 네 명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나쁘지 않겠다-은 처음으로 동시에 얼굴을 마주한다. 하지만 유혹자 혹은 내추럴 본 위너인 레오폴드의 눈에 뜨인 건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전 애인들이 아니라 처녀다운 청순함과 요염함을 갖춘 안나. 그리하여 승자와 패자의 구도는 재편되고, 패자를 기다리는 건 지옥처럼 아가리를 벌린 절망뿐이다. 막이 내리며 관객은 청년의 비극적인 죽음과 피에타상처럼 시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기묘한 동료를 보게 된다.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이 보여주는 사랑과 종말은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포커게임에 비유될 수 있다. 내가 버는 돈은 곧 상대로부터 빼앗은 것이며, 진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패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한편 파스빈더의 숭배자임을 공공연히 자처하는 오종은 내용 뿐 아니라 형식까지 상당부분 그에게서 빌어왔다. 이야기는 레오폴드의 아파트라는 단 하나의 세트 안에서 진행되며, 조명은 단조롭다. 미장센 뿐 아니라 연극적으로 과장된 연기 또한 초중기 무렵의 파스빈더의 영향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전체적으로 갑갑한 상자 안에 갇혀있는 듯한 영화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밀실이다. 카메라가 밀실을 벗어나는 것은 창 밖으로 베라와 프란츠의 모습을 비추는 라스트 씬 단 한 장면뿐이다.
밀실 안의 사건을 엿보는 관음의 쾌락을 선사하는 동시에 쓰디쓴 고통까지 함께 안겨주는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은 오종의 도발적이고 무시무시하며 때로는 불쾌하고 경박한 필모그래피에서도 돋보이는 작품. 관객은 치를 떨며 극장을 나설 수도 있겠지만, 장담해도 좋은 것은 이후로도 영화의 장면 장면을 계속해서 곰씹게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이 뻔뻔하고 냉혹한 이야기가 얼토당토않은 날조가 아니라 어쩌면 센티멘털-혹은 섹스의 쾌락-을 거세한 사랑의 진짜 정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예감하는 탓이다. 그리하여 행복이란 또다시, 안감이 누더기로 된 자줏빛 외투. 패자는 외투를 빼앗긴 채 사랑 받지 못하는 추위 속에 얼어죽고, 승자는 새 외투를 구입하면 그만이다. 가능한 한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