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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첵
히치콕을 끌어 안은 오우삼의 신작 | 2004년 1월 19일 월요일 | 서대원 이메일

한껏 멋들어진 자태를 취하며 탄두에 비장미를 실어 오바 과잉의 총질을 사정없이 감행하던 지난날 홍콩 영화의 사내들. 때로는 한번 굴러도 될 것을 좌우로 서너 번씩 구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방아쇠 당겨도 될 것을 괜스레 두 팔 벌려 고난위의 우아한 다이빙 포즈까지 선보이며 적을 향해 총알을 날리시던 우리의 영원한 형님들.

존 우라는 호칭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오우삼 감독
존 우라는 호칭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오우삼 감독
쟤가 나인지 내가 쟤인지 내가 나인지 당최 헷갈림만이 가득한 정체성 혼란과 선인보다 더 선한 악인을 폭력 미학에 담아 징한 감정에 호소하며 형님들을 그려냈기에,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그냥 걸어 다니시기만 해도 나와 당신은 그 풍모에 설레발을 치며 미치도록 열광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갑빠 영화의 용장이자 필살기적 총질 안무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오우삼을, 할리우드로 이사 갔건 말건, 쉽사리 잊지 못하고 어떤 동기가 부여되기만 하면 그에 대한 추억을 와르르 쏟아내며 열변을 토해내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이토록 자신을 애지중지 하는 한국 남정네들의 기억을 다시금 되살리고 싶었는지 참으로 오랜 만에 벤 에플릭(190)과 우마 서먼(179)이라는 농구 선수스런 할리우드의 특급 배우와 함께 작업한 <페이첵>으로 돌아왔다. 물론, 영화의 원작자인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 <마이너리트 리포트> 등의 SF 소설의 거장 필립.K.딕도 동반한 채 말이다.

허나, 위와 같은 초장에 늘어놨던 말이 겸연쩍고 부끄럽긴 하지만 어찌할 도리 없이 고백부터 하나 하고 얘기를 시작해야겠다. 다름이 아니라 당 영화 <페이첵>에는 기존에 선보였던 오우삼식 스타일과 필립.K.딕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만만치 않은 번득이는 사유의 상상력이 상당부분 증발돼 있다는 거다.

이러한 기대 이하의 또는 예상과 포개지지 않는 그의 화면빨과 내러티브는 이미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는 예견되어졌다.

“좀 더 다양한 관객과 만나고 싶다” “그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난 SF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미래적인 요소를 줄이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만들고자 애썼다”

뭐, 좋다 이거다. 막말로 시골 살던 친한 친구가 서울로 상경해 “나 앞으론 이렇게 살래”라고 말하듯 느껴지는 환경변화와 세월의 흐름에 따른 오우삼의 어쩔 수 없는 저 멘트, 좀 더 진화되고 한결 같음을 원하는 욕심 많은 관객들이 아쉽고 속상하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조금은 도량을 크게 가질 수 있다 치자. 그렇지만 이번 건 빗나가도 너무 빗나간 게 아닌가 싶다.

그의 말마따나 <페이첵>은 SF 물이라는 장르의 배경적 특성을 버리고 히치콕적 스릴러의 모티브에 기대 K.딕의 이야기를 빌려 구현한 박진감 넘치는 할리우드 액션 무비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그에 못 미치는 개성 없는 밋밋한 평작에 머무르고 만다.

미래 사회를 펼쳐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두지 않았기에 배경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고, 액션 역시 불특정 다수에 소구되기 위해 종래의 돈 때려 박은 블록버스트와 차별성이 없고, 어둡고 심오한 K.딕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사유의 폭과 너비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고 말랑말랑할 뿐이다.

화끈한 그 무엇을 보여 주지 못하고 평범한 캐릭터에 머문 우만 서먼과 벤 에플릭
화끈한 그 무엇을 보여 주지 못하고 평범한 캐릭터에 머문 우만 서먼과 벤 에플릭
결국, <페이첵>이 내세울 수 있었던 건 히치콕적 요소들을 차용한 당 영화를 그만의 방식으로 긴장감 팽팽하게 유지하며 풀어가는 것이었다. 허나, 영화는 애석하게도 이것마저 범상함이 최고라는 듯 어떠한 활력도 불어넣지 못한 채 어정쩡한 스토리로 일관하며 모든 것을 어정쩡하게 조합시킨다. 이는, 자신이 잘 하는 장기(스타일)를 버린 채 다른 것(밀도있는 내용)에 심혈을 기울인 의도치 않은 자명한 결과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완전 조오된 상황에 도착했으면서도 왜 그런 함정에 자기가 빠져들었는지 모르는 억울한 지경에 당도한 한 남자가 이놈 저놈한테 마구 쫓기며 각개전투로 돌파구를 찾아간다는 익숙한 설정의 이야기를 괄약근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드라마틱하게 극적으로 끌고 가야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거다. 게다, 그런 와중에 여자가 이야기의 중심에 뛰어 들어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는 말 하나마나 한 영화적 구성을 정말이지 딱 그 정도의 수준에서만 다루어 등장시킴으로써 <페이첵>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우마 서먼을 자신의 밋밋함에 한층 기여케 하며 콩알탄 수준의 불타오름을 가진 캐릭터로서만 복무시킨다.

그렇지만 이 같은 어정쩡함과 밋밋함을 단박에 무색하게 만드는 아우라 만땅의 명장면이 있으니, 바로 오우삼 영화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남산 공원의 비둘기와는 격을 달리하는, 고고하기 그지없는 허연 비둘기의 난데없는 등장 컷이다. 짐작컨대, 잠이 확 달아날 게다. 필자, 거짓말 안 하고 무지하게 화들짝 놀랬더랬다. 고로, <페이첵> 중 유일무이하게 평범함을 초월한 비현실적 순간 장면이니 꼭들 기억해두셨다가 직접 목도해 보시길 바란다.

어찌됐든, 여러 지면에선 <페이첵>을 오우삼과 필립.K.딕을 거세하고 맞닥뜨리면 그런 대로 즐길 만한 영화라고 썰푸셨다. 하지만 늘 말했듯 자신과 한 이불을 덮고 침실 노동을 펼친 내밀한 관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음 조우하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물론, 영화 속의 천재 공학자 벤 에플릭처럼 대단한 페이첵(보수)이 주어져 과거의 기억을 거세해버린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차곡차곡 오래 동안 쌓아놨던 너무도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뒤안길로 묻혀 보내며 배신 때릴 만큼 당 영화의 오락적 가치가 그 정도의 반대급부로서의 역할을 하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분명 있다.

4 )
ejin4rang
페이첵 원작에 비해별로   
2008-10-15 17:19
callyoungsin
나름대로 볼만했던 영화   
2008-05-19 14:28
ldk209
뭔가 있을 듯 하다가.. 허무하게....   
2007-01-21 23:51
js7keien
마이너리티...의 각본가 작품이라니...동일인물의 각본도 감독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2006-10-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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