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것도 근사한가보다. 명작동화 판인 피터 팬 말고 벙개스토리 버전도 본다. 이 전에 영화가 날라 다니고, 찔러대는 판타지 액션물이라면 이번 영화는 화려한 특수효과로 펼쳐지는 판타지 로망스에 가깝다. 무엇보다 P. J 호간 감독의 <피터 팬>(2003)은 원작을 충실히 살려낸 영화이다.
피터 팬은 원작인 제임스 베리의 5부작 희곡대본인 <피터 팬,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소년(Peter pan or The boy who would not grow up)>(1914)을 바탕으로 여러 작품이 만들어졌다. 애초에 희곡이 나오고 소설이 나왔지만 후에 피터 팬이 인기를 모으면서 <피터와 웬디>, <웬디가 자랐을 때> 등 시리즈물까지 나오게 된다. 영화로는 무성영화인 <피터 팬>(1924)으로부터 어른 피터 팬이 나오는 스필버그의 <후크선장>(1991), 동화로 팔아먹은 디즈니의 <리턴 투 네버랜드>(2002) 등에 만화, 연극, 텔레비전 시리즈 등 여러 모양새를 갖춘다.
어릴 때부터 피터 팬 동화책을 싫어했다. 싫은 이유는 이해가 안 갔다. 치명적으로 배신을 때리고 주인공들의 삼각, 사각관계까지 어지럽다. 이런 책이 무슨 명작인지 역시나 이해가 안 갔다. 피터는 하늘을 날고 웬디와 같이 악당도 신나게 무찌르고 십오 소년 표류기마냥 모험도 한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결말로 갈수록 영화의 첫 장면에 떠억 하니 뜬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명, 피터 팬을 빼고’처럼 피터는 배신을 때린다. 묘하게도 어른이 되길 거부한다. 그는 코앞에 백 미터 도착선을 보고는 재빨리 뒤돌아서 가버린 일등주자 같다. 이렇게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주인공 책을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본다. 판타지니까 아이들은 그냥 붕붕 날아다니는 것만 보면 족하나?
미스터리는 이어진다. 웬디를 데리고 네버랜드로 날아간 피터와의 관계는 괴상하다. 질투의 화신 팅거 벨을 보면 삼각관계다. 그런데 동화책이나 영화는 애들의 수준을 우습게 여겨서인지 무조건 신나는 액션물이란다. 이런 오해와 달리 이번 영화 속에서 피터 팬도 좀 커서인지 애들의 수준을 알아봐준다. 원작은 그야말로 인생무상을 깨달아버린 순진한 작업남 피터의 벙개 스토리 아니었던가. 이전 영화들은 둘의 작업일지를 생략해버렸지만 영화는 업그레이드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줄거리는 크게 달라짐은 없다.
런던의 고풍스런 웬디네 집이 보인다. 돈을 많이 들인 만큼 의상부터 암울한 중세배경은 ‘해리포터’를 보고 있는 지 잠시 착각도 든다. 그러다 잠시 웬디 달링(원작에 이름)과 피터와의 첫 대면이 시작될 때면 금세 어두운 판타지의 세계는 밝아진다.
도서관에서 1928년에 복사된 제임스 벨리의 희곡전집을 빌려왔다. 때가 꼬질거려서 금세라도 벌레가 기어 나올 듯한데 첫 장은 영화처럼 피터 팬과 웬디와의 만남이다.
영화는 보면 알 것이고, 영화와 다른 질문들을 옮겨본다. 선수걸 웬디! 빠질 수 없지. 먼저 멘트를 날린다.
‘이름이 뭐니? 어디사니?’
‘응, 부모가 낳자마자 도망쳐서 요정들이랑 살어.’
피터는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웬디는
‘너 너무 달콤해. 근데 너 키스가 뭔 줄 알어? 괜찮으면 키스해두 대?’
‘너 좋으면.’ 이런 야시시한 스타일이 5부중 1부의 대부분이다. 신기한 모험의 나라 이런 것들 별로 안나온다. 원작을 퍼 올린 영화 또한 사춘기에 접어든 귀여운 소년 소녀들의 벙개스토리를 보여준다.
근데 궁금하지 않던가. 대체 피터는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웬디를 찾아 그 멀리까지 왔을까. 어릴 때 나는 몹시 궁금했다. 원작을 보니 네버랜드의 아이들은 이야기를 전혀 모른다고 한다. 그나마 알다가 만게 신데렐라란다.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난 후 유리 구두를 잃어버리곤 결말이 어떻게 된 건지 그걸 알려고 찾아온 것이란다. 참 피터 팬에 왠 신데렐라 공주가 나오냐면 원래 원작자가 『신데렐라의 키스』란 소설책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 없는 부분이다. 퍽녀 팅거 벨은 질투의 화신이다. 팅거 벨이 처음부터 퍽녀는 아니다. 피터와 웬디의 자겁을 보면서 열을 받은 팅거 벨은 요란을 핀다. 책보다 팔락거리는 팅거 벨은 참 귀엽다. 팅거 벨은 삼각관계에 휩싸이자 피터에게 ‘난 네꺼고 웬디는 못생긴 여자’라고 한다. 피터는? 물 건너간 과거 작업녀이다. ‘너는 그냥 숙녀고 난 신사’라고 작업남답게 응수한다. 아무 상관없는 퍽녀란 소리다. 그리고 웬디에게 팅거 벨(Thimker bell:땜장이 종)이란 이름은 요정들의 구멍난 물주전자나 양동이를 고쳐주는 그녀의 본업이라서 붙었다고 친절히 말해준다. 한마디로 과거 여자를 팔아서 현재 여자한테 점수를 사려하는 얄샵한 피터다. 영화에는 몰입을 위해 주인공의 매력을 부각시켜야 되므로 이런 면은 안나온다.
웬디는 결정하고 떠난다. 책의 서평에서는 웬디는 네버랜드로 안가도 원래가 집을 나갈 스타일이며 피터마냥 어른이 되어 시집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적혀있다. 아마도 그렇게 급진적인 비행소녀같기에 영화에선 관람객인 아이들을 고려해서 역으로 바꾼 것 같다. 피터의 엄마타령은 후에 나온다.
원작을 떠나 영화를 봐도 아무래도 피터는 타고난 작업남이다.
웬디를 만나선 키스라는 물건으로 말해지는 ‘도토리’ 목걸이를 선물공세하고, ‘엄마가 되어줘’라며 모성애를 부각시킨다. 반면에 죽은 팅커 벨 앞에선 눈물을 철철 흘린다. 불쌍한 건 퍽녀취급 받는 팅거 벨이다. 선수걸에게 남친을 빼앗기고는 질투가 너무 나니까 네버랜드의 소년들에게 날아가선 웬디가 피터를 죽였다는 거짓말을 한다. 선수걸인 웬디마냥 이야기를 들려 줄 재주도 없이 요정언어만 갖고사는 팅거 벨인데 머리라도 좀 좋았으면 안 들통 날 텐데.
머리도 나쁜 것 같고 주특기는 오로지 매달리는 애절한 마음 하나다. 그 마음하나로 피터대신에 독약까지 마신다. 요정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열녀다. 그런들 뭐하랴. 이미 피터의 마음은 웬디한테 가있다. 웬디가 피터에게 던진 선상위 ‘첫 키스’ 한 판에 완패 당한다. 책에서는 재미난 피터 팬의 불문율이 있다. ‘어느 누구도 피터 팬의 몸에는 손하나 델 수 없다.’ 그 불문율을 깬 것이 선수걸 웬디다.
영화적 배경은 오스트리아였지만 웬디역인 허드우드는 영국출생답게 대사톤과 얼굴이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이다. 연기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가 일순간 대스타로 픽업된 이유가 아닐까.
특별효과는 위압적이다.
게임시장을 의식한 듯한 고딕 중세성과 필름 르와르적인 암울한 분위기를 말끔히 없애주는 요정들의 춤은 환상적이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에서 볼 수 없는 기술의 미학을 엿보인다. 현대영화의 미는 돈 들인 기술이 낳는다고 하지만 춤추는 요정들을 보면 딱히 그렇지만은 아니다.
이런 특별효과외에 주인공들 중 웬디와 피터사이에 등장한 폭탄 후크선장의 변모된 모습이 획기적이다.
후크선장이 피터의 작업구도속에 등장하면서 영화는 삼각이 아닌 사각관계로 간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딱 두개인데 유례없는 키스씬과 후크 선장의 인간미이다. 숲 속에서 웬디와 피터의 다정한 춤사위를 보던 부럽다못해 혼자라고 절망하는 후크선장을 본다면 사각이든 오각이든 폭탄은 서럽다. 후크선장은 서러움을 퍽녀인 팅거벨과 토닥이며 나눈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웬디를 납치해선 이야기를 해달라고 엄마노릇을 강요할 때는 후크선장이나 피터나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영화에 없는 원작에서는 후크선장의 이력이 나온다. 그는 학교도 다닌 배운 사람이다. 그 증거를 후크 선장이 걸치고 다니는 귀족 같은 옷이 보여준단다. 후크선장이 학교도 다녔다는 게 경악스럽긴 했다. 그래도 팅거 벨보단 머리가 좋고 뼈대도 있었나보다.
후크선장이 깡패의 길인 해적의 길로 들어선 데는 사연이 있다. 악어에게 먹혔다는 오른 팔에다 후크를 달고 다니지만 원작은 말한다. 그가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후크선장은 혼잣말처럼 ‘만약 내가 우리 엄마였다면 팔 한짝 없는 애로 태어나지 않게 기도했을 텐데’ 말한다. 장면 중에 오른쪽에 낄 후크를 보석처럼 매만지는 그를 보게 된다.
후크선장은 사악하긴 해도 바다와 싸워대는 용감성도 있고, 웬디 달링의 아버지와는 반대로 지 하고 싶은 대로 넘버 완이 되기 위해 피터 팬 일당과 싸워 될 만큼 영웅심리도 넘친다. 원작에는 그는 사람을 죽일 때마다 꼭 미안하단 신사의 말투를 썼다고 하나 영화는 아직도 그에게 악역을 맡긴다. 후크 선장 역은 웬디의 아버지 미스터 달링의 역인 제이슨이 일인이역을 맡아서 정반대의 연기를 선보인다.
피터도 후크도 네버랜드의 아이들도 다들 선수걸 웬디를 보면 공통적으로 읊는 대사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영화를 보면서 원작 프랑스 영화 <페드라(Phaedra)>가 불현듯 떠올랐다.
<페드라>는 그리스 신화 속에 ‘페드라’라는 비운의 여왕을 그린 영화다. 여주인공인 페드라는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와 성대한 결혼을 하며 젊은 나이에 여왕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의붓아들인 청년 히폴리투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포기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택한다. 후에 다시 만들어진 <페드라>(1962) 또한 비슷한 얼개이다. 이 영화 속에는 프로이드의 주장처럼 인간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근친에 대한 욕망이 표현된다.
왜 이 영화가 떠올랐을까. 아마도 남성의 깊은 무의식에 숨겨진 모성에 대한 욕망이 우회적으로 표현된 부분은 아닐까. 웬디를 데리고 온 피터는 너희들에게 엄마를 데려왔다고 말한다. 원작을 보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상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뜻도 포함된다. 두려울 것 없는 해적들이나 칼 장난을 치며 노는 네버랜드 아이들도 웬디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만은 다들 사자 앞에 쥐가 되어버린다. 이야기가 대체 뭐라고?
여기에 잠잘 때마다 책을 읽어주던 서구 문화 중 어머니의 역할이다. 소년인 피터가 어른인 후크선장도 우습게 여길 만큼 모두의 정신적인 아버지 역할을 한다면 표면적으로 이야기꾼이란 형식을 빌어 웬디는 엄마를 상징한다.
영화는 없고 원작에서 작업남 피터는 웬디를 처음 만난 날 고백한다. 자신의 출생에 대해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들었고 듣는 순간 영원이 어린애로 남고, 즐겁기 위해서 요정나라로 도망쳤다고 한다. 말하자면 피터도 가출한 비행청소년이다. 피터는 7일간 부모들에게 선택받지 않아 네버랜드로 보내진 고아들의 짱이다.
그는 네버랜드에서 선수걸 웬디를 만나 즐겁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웬디는 선수걸에서 내려와 어느새 마음에 필이 꽂힌 걸 알게 되고 피터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오늘 밤은 소원을 들어주는 날인데, 네버랜드에 있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자고. 단 원하지 않는다면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도망갈 빌미를 준다. 이 순간 작업남 피터는 순간 긴장한다. 애 아버지가 되라니. ‘오~~노!!!’ 당황한 웬디가 피터에게 묻는다.
‘나에 대한 진짜 감정이 뭐야?’ 피터는 ‘너에게 홀딱 빠진 아들중 하나야.’라고 대꾸한다. 너에게 빠진 한 소년도 아닌 아들. 역시나 피터는 작업남이다. 지나간 작업녀 이야길 꺼낸다.
‘타이거 릴리도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 근데 나보고 자기는 내 엄마가 아니래.’
끝까지 얍쌉한 피터다.
원작은 피터가 웬디를 차버린 셈이지만 이러면 보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기 때문에 영화는 반대로 간다. 피터가 웬디에게 묻는다. ‘웬디야 나에 대한 진짜 감정이 뭐이야?’ 영화는 원작을 비틀면서 결말에서 안전하게 집까지 웬디를 모셔다 주고는 그는 다시 아름다운 섬나라인 어린이들만 사는 네버랜드로 돌아간다. 좋아해도 어쩔 수 없는 이별로 눈속임한다.
이때 웬디는 선수걸이다. 피터를 잡지 않는다. 대신 선수답게 마지막 추억의 멘트를 날린다. ‘나를 절대 잊지 마. 다시 찾아 줄꺼지?’ 피터는 머뭇거리지만 옆에서 보채는 팅거 벨을 보고는 표표히 떠나버린다. 결혼할 일도 없고 일할 필요도 없는 네버랜드로 도망가 버린다. 영화는 전해준다. 피터는 그 후로 웬디를 찾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 스토리는 이야기로만 내려온다고. 허무하지만 예상된 선수걸과 작업남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순수하다. 그것이 원작인 피터 팬 벙개스토리였다.
피터가 말하는 즐거움은 무얼까. 하긴 어린시절에는 별일 없어도 기쁘고 재밌었다. 어른이 되서는 그냥 기쁜 법이 없다. 껀수를 만들어야 되는 인위적인 즐거움이다. 아무 이유 없이 즐겁던 그때가 그립다. 근데 그때는 왜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어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