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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이 말이 더욱 가슴 속에 파고들었다. <빙우>를 보았을 때, 불현듯 이 어구가 다시 떠올랐다. 내게 있어 끝에서 끝까지 가려는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은 치열한 예술 정신을 가진 예술가들 외에, 진지한 산악인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죽는다는 게, 참, 별게 아니구나.’ 산에서 7~8m를 추락하면서 어느 순간 불안도 공포도 눈녹듯 스러지고,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누군가의 이 말처럼 산에서 겪는 일들의 그 농도짙은 경험은 내게 또 하나의 동경이었다. 삶의 극점인 곳, 죽음과 아주 가까운 곳, 나도 산에 오를 수 있을까.
국내 최초의 ‘산악 멜로’라는 타이틀을 가진 <빙우>. 누군가는 < K2 >, <클리프 행어> 등의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보았던, 웅장하고 스릴 넘치는 스케일의 산악 영화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캐나다 유콘 주의 화이트 패스와 르웰린 빙하지대 등의 해외 로케이션까지 거쳤다는 말들이 어렵지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빙우>가 내세운 ‘산악’의 노선은 영화 자체를 위해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나 스태프들이 무엇보다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며 갖은 고생끝에 찍었다는 산악 장면들은 감독이 얘기한 대로 많은 부분이 잘려져 나갔고, 관객들이 일별할 수 있는 뭔가 근사한 산악 장면들은 손에 꼽기도 주저되는 면이 있으니 말이다. 대신 세트임이 간파되는 산악 장면에서 한껏 감정을 고조시키는 <빙우>의 순진한 몸짓에는 어쩐지 당황스러워지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건 내게 아무래도 좋았다. 어느 정도의 분위기만 느낄 수만 있다면, 노력의 흔적만 엿볼 수 있다면, 눈으로 들어오는 모양새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단 남자 주인공들인 ‘중현(이성재)’과 ‘우성(송승헌)’이 왜 산에 오르며, 그러한 산에서 무엇을 느끼는 지에 대한 사색의 편린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빙우>는 그들의 산행에 ‘사랑하는 여인’이 개입돼 있음을 보여준다. 중현은 사랑했던 여자를 잃고, 홀로 남은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 산에 오른다. 또 우성은 사랑했던 여자가 ‘잃었던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던 그 산에 죽은 연인과의 재회(?)와 더불어,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떨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렇게 멈춰버린, 아니 그렇게 포커스된 주인공들의 산행 동기는 내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산악 영화로서의 <빙우>에선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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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감독은 산악의 축에서는 빛이 나지 않았던 여성 감독 특유의 세련된 감성을 멜로의 축에서는 유감없이 발휘한다. 조명과 촬영, 분장 등이 고루 어우러져 어느 한국 영화보다도 윤기나는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성재는 ‘진정한’ 사랑이지만, 너무 늦게 찾아온 사랑에 번민하는 고독하고 음울한 ‘중현’ 역에 제격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캐릭터 중현은 그의 깊은 눈빛에 탄력을 받아 더욱 슬픈 숨결을 내뿜는다. <빙우>가 <카라>, <일단 뛰어>에 이어 세 번째 필모그래피가 되는 송승헌은 외사랑으로 아파하는 우성의 캐릭터를 눈물이 뿌옇게 어릴만큼 인상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한편 경민 역의 김하늘은 그녀의 독특하게 맑은 이미지와 어두운 이미지를 알맞게 조율하며 영화에 향기를 불어넣는다.
산악 영화에 대한 한 차원 높은 명상 대신, 슬프도록 아름다운 멜로를 선사하는 <빙우>. <빙우>가 보여주는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에 대한 정서는 우리들의 그것과 자연스레 겹쳐지기에 더욱 가슴시리게 다가선다. 언젠가 내가 산에 올라 중현과 우성과 같은 극한 상황에 놓인다면, 내 목숨을 지탱하는 기억의 조각들도 결국엔 ‘사랑’이 되지 않을까.
“이건 내꺼. 이것도 내꺼. 그리고 이것도 내꺼….”라고 경민이 중현에게 바싹 붙어 얼굴을 천천히 더듬으며 달콤하게 속삭였던 영화 속 대사처럼, 분명 연인과의 행복했던 추억들과 그 추억 속에서 배어나오는 목소리들이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점점이 흩어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