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고 싶다.
놀고 싶은 것이 비단 아이들뿐이겠냐 만은 놀고 난 뒷정리에 두려운 어른스런(?) 걱정 탓에 어른들은 지레 손을 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가 놀아라~"
이런 광고도 나왔었지. 눈처럼 흰옷에 흑탕물을 튀겨 가며 아이랑 엉켜 노는 엄마. 하지만 이 엄마, 무슨 뒷 빽이 있기에 그리 천진난만한 얼굴일 수 있단 말인가?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은 정녕 버릴 셈인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티끌 자국 하나 남김 없이 없애주는 강력한 세제가 있기 때문이란다. 하~ 그 광고, 모르긴 해도 장난꾸러기 자식 둔 집 부모의 마음을 심하게 뒤흔들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겠다.
그렇다. 놀기 전의 상태로 감쪽같이 돌아갈 수만 있다면 흑탕물에 뒹굴든 집을 때려 부시든 무에 문제란 말인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곳. 그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단다. 누가? 마법 모자를 쓴 말하는 고양이 <더 캣>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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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녹색, 보라색 등 파스텔 톤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는 청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직장상사 덕분에 놀고 싶은 아이들을 제지해야 하는 엄마가 있고, 엄마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두 아이 샐리와 콘래드가 있다.
내일의 스케쥴 준비와 스케쥴 수정 스케쥴까지 꼼꼼히 PDA로 관리하는 새침데기 동생 샐리(다코타 패닝)와 청개구리적인 장난끼 탓에 엄마의 애인에 의해 사관학교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 오빠 콘래드(스펜서 브레슬린)는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문제의 고양이 더 캣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예견되다시피 더 캣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신나는 세계가 펼쳐짐과 함께 집안은 엉망진창 아싸리판이 되고 만다.
영화가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라면 그 물 안에서 첨벙첨벙 꺄르르 소리날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기상천외한 첨단 기계들, 이를테면 운전이 하고 싶다면 아이에게도 핸들이 허락되는 나르는 듯한 자동차 슬로우(S.L.O.W)가 등장하고, 부서진 집안 한쪽 구석에서 롤러 코스터를 타듯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내달리기도 하며 그림같이 반듯, 깨끗하던 집 벽 이곳저곳에는 물감 튀긴 자국들도 만들고 말이다. 이 모든 부분은 아카데미 미술상에 3번이나 노미네이트 된 바 있는 보 웰치 감독에 의해 화려하고 정교하게 꾸며져 보는 이들을 현기증 나는 즐거움 속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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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춤추며 자유자재로 마술을 부려 아이들의 혼을 빼놓고야 마는 이 고양이는, 미셸 파스트로가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에서 말했듯 무질서와 범법의 상징에서부터 즐거움과 역동성의 의미까지 두루 포함한 스트라이프 무늬 모자를 쓰고, 시종 팔랑 팔랑 뛰어 다니며 정리된 모든 것을 뒤집고 어지럽힌다. 그리고는, 있는지도 몰랐던 법적 조항을 들어 부서진 집을 정리해 나간다. 어른들이 보았을 때 더 희열을 느꼈을 바로 그 청소 기계 'D.I.R.T'로 말이다.
하지만, 그저 신기한 기계와 눈이 핑 돌 정도로 빠른 상황 전개 속에서도 한가지 흠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감독이 간과한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인종적 차별 주의. 덕분에 영화를 그저 천진난만하게 즐길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에랴.
난리법석 난장판 된 집에서 끝까지 골아 떨어져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당한 베이비 시터가 콴 부인이 아닌 스미스, 혹은 베이커 부인이었다면 이 찝찌름한 뒷맛은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설교적이지 않으면서 도덕적 교훈이 담겨 있어 미국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로 읽힌다는 동화책 "The Cat in the Hat"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캣>은 미국에서 꽤 좋은 성적의 흥행 스코어를 기록했다. 맘껏 놀고 정리정돈까지 해주는 이 기상천외한 고양이를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