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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코, 키스해 볼까요.”
“개구리가 된 왕자님이 공주의 키스로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바보, 그건 동화일 뿐이야.”
‘아니, 이럴 수가, 정말 변신하지 않는단 말야? 어서 빨리 미남 파일럿으로 변신해 지나랑 결혼해야 하는데….’ 못생긴 주인공이 나오면(거의 나오는 경우도 없지만?), 으레 멋지게 변신하려니 생각하던 시절, 이 아니메를 불법 CD로 구워보며 한참을 아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돼지니까 돼지코, 배는 볼록, 터질듯한 허벅지 등에 실망했던 것도 잠시, 무인도에서 혼자 분위기있는 샹송을 들으며 포도주를 홀짝이는 모습이나, 윤발이 오빠풍 바바리에 깜장 선글라스를 끼고 뱃머리에 서 있는 등 로맨틱한데다 냉소적인 카리스마를 폴폴 풍기는 돼지 포르코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다. 그뿐인가 “좋은 녀석은 언제나 죽어”,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등등 흘리는 대사마다 어쩌면 하나같이 명대사인가.
이 강렬한 추억이 십여년이 되어가려는 2003년 겨울, 드디어 <붉은 돼지>가 극장에서 개봉된다니 기분이 참 묘해진다. 이 아니메는 <마녀배달부 키키> 이후 한동안 작품 행로에 고민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기 자신을 위한 영화’라고 공언한 뒤 만들었다고. 한 잡지에 연재하던 자신의 글 ‘비행정 시대’를 기초로 만든 이 영화는 처음엔 일본 항공사의 기내 상영물로 기획됐던 중편이었으나 수정의 수정이 거듭되며 지금의 장편으로 탄생됐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배달부 키키> 등등, 떠올리는 영화들마다 하늘을 나는 이미지가 많은 것이 어째 심상치 않더니, 이유인즉 미야자키가 비행기에 빠싹할뿐더러 파일럿이 꿈이었다고.)
1차 세계대전 중엔 이탈리아 공군의 에이스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엔 돼지로 변해버린 채 하늘의 해적을 소탕하는 현상금벌이 파일럿이 된 ‘포르코’. 이러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붉은 돼지>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반파시즘을 투영하고 있는 아니메다. 전쟁의 참화가 직접 묘사되어 있지 않아도, 더 이상 공군이기를 거부하는 포르코의 대사나 몸짓에서 관객들은 무수히 많은 실사 영화들에서 보았던 전쟁의 징그런 파편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포르코는 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동료들을 잃지만, 그 중에서 절친한 친구이자 지나의 남편인 베를루니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3대의 적기(독일군)와 공중전을 벌이는 와중에 친구가 격추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포르코는 자신과 기체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어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것. 뚜렷하진 않지만, 이러한 영화 중반의 회상신은 그가 사랑하는 친구를 먼저 떠나 보냈다는 후회와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돼지가 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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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주제는 당의정처럼 녹아있고, 영화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건 미야자키 특유의 기발하고 풍부한 상상력, 재미있고 착한 캐릭터들을 재치있게 아우르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예를 들어 포르코가 피오의 정비소에서 비행기를 수리할 때도 전부 여자들이 동원되는 것도, 알고 보면 종전 후 대공황까지 겹치자 남자들이 모두 일자리를 찾아 떠난 현실을 은유한 것임에도 영화의 흐름상 그 귀엽고 유머러스한 묘사에 웃음이 피식 나와버리니 말이다.
일본에서 개봉됐을 땐 현재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며 일본 만화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붉은 돼지>. 그러나 이 영화는 프랑스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미야자키의 이름을 유럽에 본격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뭐 이런 재미없는 말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백문이불여일견, 미야자키의 영화를 표현하는 말은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