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계절 겨울에 무비스트가 아주 특별한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2003년 12월부터 2004년 2월까지 국내에 개봉되는 영화들을 한국, 할리우드, 유럽, 일본으로 나누어 여러분들의 한 눈에 쏘옥 담아드립니다.
한국
평년보다 기온이 높아 펑펑 내리는 흰 눈을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올 겨울, 한국 영화에서도 제대로 된 겨울 느낌을 만끽하긴 힘들 듯하다. 하얀 눈발이 날리거나 달콤하고 감미로운 연인표 멜로 영화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나 <안녕 유에프오>정도. 대신에 이런 허전한 느낌을 채워주는 것은 단연 코미디 장르다. 그 중에는 <그놈은 멋있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과 같이 제목에 난데없는 3인칭 바람을 몰고 온 말랑말랑한 청춘 영화들도 있고, 우연히 남한에 표류된 북한군을 코믹하게 풀어낸 <동해물과 백두산이>, 조폭 코미디가 더 이상 긁어댈 것 없는 솥단지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자못 궁금한 <목포는 항구다>, <맹부삼천지교> 등과 같은 코미디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겨울 가장 빼놓을 수 없는 화제작은 100억원이 투자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와 순제작비만 146억원이 들었다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알맞게 조율할 줄 아는 이들 감독이 어떤 바람을 겨울 극장가에 몰고 올지 촉각을 바짝 곤두세워 볼 일이다.
감독 강우석/출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제작 시네마서비스, 한맥영화/배급 시네마서비스/개봉예정일 12월 24일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보기만 해도 원색적이고 폭력적인 어감을 뚝뚝 흘리는 이 구호를 무진장 입천장에서 굴려댔던 사나이들. 그들은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도 아닌 바로 우리나라의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이었다. 1968년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특수부대 원 31명이 박정희 암살을 목적으로 남파되자, 이에 질세라 우리도 684부대, 일명 실미도 특수부대원을 결성했던 것.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살인기계로 맹렬히 훈련받던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옛날 신문을 들춰보면 단박에 알게 되지만, 강우석 감독이 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영화 <실미도>로 실감나게 재현했으니 얼음같이 투명하고 섬뜩한 역사의 진실과 마주해 보시라.
Don't miss!-실미도 훈련장, 대방동 거리 등 세트 제작에만 무려 30억원이 든 이 영화는 질좋은 화면을 위해 이탈리아, 뉴질랜드행도 서슴치 않았다 한다.
If movist-연인과 함께 팝콘을 먹으며 낄낄대고 껄껄대고픈 유혹을 과감히 뿌리친 당신에게 영화 <실미도>는 빨간 감처럼 한 주먹 성숙한 깊고 진지한 내면을 선사할 것.
감독 이건동/출연 차태현 김선아/제작 튜브픽처스, 싸이더스HQ/배급 튜브엔터테인먼트/개봉예정 12월17일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잘 나가던 연애 사업에 제동이 걸리는 여자가 있다. 이름하여 '성탄절 실연 징크스'를 가진 볼링장 직원 민경. 그런 그녀를 짝사랑해 오다 드디어 올 크리스마스에는 결실을 맺어보리라 굳게 다짐한 남자가 있으니, 귀엽고 어리버리한 외모의 파출소 소속 순경 성병기(왠지 묘한 어감이지 않은가!)다. 서둘러 썸씽을 만들기 위해 머리털을 휘날리는 병기에게 하필이면 라이벌이 등장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감방에서 보내오던 온천파 두목 석두가 느닷없이 민경에게 애정공세를 펼치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 그런 세 사람의 운명이 궁금하다면, 처마 밑에서 고드름을 떼어 살살 녹여먹던 따뜻하고 소박한 감성으로 스크린 앞에 앉아 볼 것.
Don't miss!-한여름에 겨울 장면을 찍기 위해 이 영화가 사용한 비법은 튀긴 쌀가루와 소금이라고. 사용한 소금의 양만 해도 무려 20톤을 넘었다 한다.
If movist-크리스마스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관람을 삼갈 것. 제목부터 크리스마스가 해피하고 에로틱 하다는데 어쩌겠는가.
감독 김은숙/출연 이성재, 송승헌, 김하늘/제작 구본한/ 개봉예정 1월 16일
큰 원정을 떠나거나 위험한 산에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서를 쓴다고 한다고 한다. 한 장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의 유서를 함께 쓴다고. 이 영화의 두 남자 주인공들도 그런 위험한 원정을 떠난 사람들이다(유서는 써 두었을까?). 알라스카, 아시아크 등반에 나섰던 중현과 우성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에서 조난을 당한다. 게다가 중현은 다리에 심한 부상을 당하는데, 우성은 해외원정과 조난 경험이 모두 처음이다. 어두운 얼음 동굴 안에서 잠들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각자의 기억을 더듬던 그들에게 뜻밖에도 공통점이 발견된다. 따뜻한 아랫목을 포기하고 극장으로 달려간다면 장엄한 스펙터클과 함께 그들의 비밀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
Don't miss!-국내 최초의 산악 영화인 이 영화는 세계 정상급 산악인인 정승권이 시나리오 감수부터 배우들의 등반훈련, 촬영과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참여했다고.
If movist-'산은 단순하지 않지만 산은 인간에게 단순해지길 요구한다. 복잡한 것을 주렁주렁 매달고는 산에 오를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악 영화는 어떻게 봐야 하지?
유럽
편수는 적지만 올 겨울에 개봉되는 유럽 영화들은 젓가락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채로운 식단을 마련하고 있다. 누벨바그의 대표주자인 자크 리베트의 <알게 될거야>, 클로드 를르슈의 <레이디스 앤 젠틀맨>,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팜므파탈> 등 유명 감독들의 영화들은 물론이고, <아타나주아>, <타임마스터>,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등의 독특하고 깊이있는 영화들, 프로 스노우보더의 세계를 짜릿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액션팝콘무비도 곁들여져 있다. 그뿐인가 하면 12월부터 2월까지 시네마테크 등에서 상영되는 소규모 영화제들도 색다른 이벤트다. 12월1일부터 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퀴어베리테'를 필두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신작들,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되는 하워드 혹스 회고전, 이탈리아 무성영화제 등이 줄줄이 사탕처럼 펼쳐질 예정이니, 골라먹는 재미에 흠뻑 빠져 보시라.
감독 프랑수아 오종/출연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수입 너나필름/배급 무비즈엔터테인먼트/개봉예정 미정
여기 앙증맞은 인형의 집을 크게 부풀린 듯한 공간이 있다. 선남선녀들이 소꿉장난하듯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비춘다면 당연히 심드렁해 지겠지만, 이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 것은 흥미롭게도(?) 살인 사건이다. 밤새 폭설이 내린 크리스마스날 아침, 집안의 유일한 남자인 아버지가 등에 칼이 꽂힌 채 숨져 있던 것.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고, 개도 한번 짖지 않았는데 과연 누가 그를 죽인 것일까. 이때부터 막내딸 카트린을 포함해 8명의 여인들이 각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개봉이 연기됐던 작품으로 유럽 영화계의 '악동'인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코믹 미스터리 뮤지컬.
Don't miss!-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파니 아르당, 에마뉘엘 베아르 등 쟁쟁한 프랑스 여배우들이 총출동했으며, 2002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If movist-살인사건의 긴장감을 느낄 요량이라면 관람을 삼갈 것. 자칫 등장 인물들의 '깜찍한'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는 유치원생이 될 수 있다.
감독 제라르 크라브지크/출연 뱅상 페레, 페넬로페 크루즈/수입 배급 길벗/개봉예정 12월 31일
'미신일 뿐이야.'라고 큰 소리 뻥뻥 쳐도 별자리 하나에도 사정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연약한 마음이야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루이 15세가 통치하는 18세기 프랑스, 잘생긴 바람둥이 팡팡은 잠시 즐긴(?)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런데 소처럼 질질 결혼식장에 끌려가던 그에게 우연히 만난 보헤미안 여인 아드린느가 "당신은 군대에서 명예를 얻을 것이고, 앞으로 왕의 딸과 결혼할 운명"이라고 예언한다. 이 말에 없던 의지가 펑펑 솟아난 팡팡은 결국 결혼식장을 빠져나와 7년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군대에 지원한다. 병사로 가던 중 강도에게서 공주와 왕의 애첩을 구하게 되는데, 그는 정말 아드린느의 예언대로 왕의 딸과 결혼할 수 있을까?
Don't miss!-1952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크리스천 자크 감독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했으며, 제56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작품.
If movist-뤽 베송이 제작했다는 것은 더 이상 특이할 것이 없지만, 뱅상 페레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기 궁합만은 놓칠 수 없는 구경 거리.
감독 르네 랄루/수입배급 백두대간/개봉예정 1월 중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캐릭터의 탄력성이나 스토리라인의 재배열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이것은 대개 모더니즘적인 미래사회의 비판이나 SF장르의 굴절된 반전미학으로써 승화된다고 한다. 프랑스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볼 길 없던 우리에게 그런 심오(?)한 평가를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르네 랄루 감독의 <판타스틱 플래닛>이 개봉되는 것. 휴머노이드(인간과 닮은 모습의 로봇이나 외계인)들의 삶을 다룬 이 애니메이션은 과학의 발전이 한계에 달해 인류가 황폐해지고 새로운 문명이 도래한다면, 그뒤부터 인류가 풀어가야 할 궁극적인 문명관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Don't miss!-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197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특별상을 수상했다.
If movist-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로란 토폴이 디자인을 맡은 이 애니메이션으로 기묘하고 환상적인 미래 여행을 떠나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