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언제나 현실의 다채로움을 따라잡지 못하는 법. 결함투성이 인물이 난관을 딛고 승리를 거두는 퍽 전형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음에도 <씨비스킷>이 흥미로운 건 실화이기 때문이다. 대공황 말기,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 지면을 장식했던 건 루즈벨트 대통령도,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아닌, 그렇다고 클라크 게이블이나 루 게릭 같은 명사들도 아닌 구부정한 작은 경주마였다. 이름부터 남루한 경주마 씨비스킷(선원용 건빵이라는 뜻)은 당대 미국인들의 희망의 상징으로 회자되며 역사상 가장 특별한 스포츠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의 원작은 경마 전문가 로라 힐렌브랜드가 쓴 <시비스킷: 신대륙의 전설>. 책이 요약하고 있는 씨비스킷의 업적은 대략 다음과 같다. “6년 간 33회의 경주에서 우승. 13개 트랙 기록 갈아치움. 최단거리와 1/2마일 경주 세계기록 경신, 1과 5/8마일 장거리 경주 트랙 기록 갱신...” 수치가 보여주는 기록보다 중요한 부분은 볼품 없는 작은 경주마가 전 국민, 특히 소외 받는 계층에게 가졌던 의미. 미국 역사상 최다 관중을 동원한 상위 3개 경기 중 2개가 씨비스킷의 경주다. 관중들은 ‘씨비스킷 특급’이라는 특별열차를 타고 꾸역꾸역 몰려들었고, 경기를 관람하지 못하는 사람들 400만 명이 라디오 중계를 향해 귀를 곤두세웠다고 전해진다.
언급했듯 영화의 주제는 명마의 무용담이 아니라 세 사람과 한 마리의 신실한 관계다. “말에게 안녕을 고하라.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야심만만하게 외쳐대던 자동차 거부 하워드(제프 브리지스)는 역설적으로 자동차 사고로 아들을 잃고 만다. 조련사 톰 스미스(크리스 쿠퍼)는 번잡한 인간사를 피해 유목민처럼 살아가고, 기수 레드 폴라드(토비 맥과이어) 역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다시피 한 존재. 게다가 그에게는 기수치고 키가 너무 크다는 단점까지 있었다. 상처투성이 콤비의 운명적 결합. 작고 볼품 없지만 성깔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말 씨비스킷에게 승리는 ‘자신이 반드시 있어야 할 집’ 그 자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세 사람은 각기 씨비스킷의 변형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우리들은 바로 이렇게 공황을 이겨내고 오늘날의 미국을 건설했다- 만화 <슬램 덩크>에 매번 주문처럼 등장하는 대사 “우리들은 강하다”처럼, 이건 자부심 강한 미국인들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자랑스런 과거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전혀 다른 시공을 사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역시 충분한 호소력을 가진다. 우선 치하해야 할 것은 제프 브리지스와 토비 맥과이어, 크리스 쿠퍼 세 사람이 보여주는 탁월한 앙상블. 라디오 해설가 틱톡으로 분하며 영화의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해낸 윌리엄 H. 메이시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거기 더해 경마팬들로부터 실제 경마의 스릴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왔다는 찬사를 들은 경주 장면도 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