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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어느 대여점이나 인지도가 좀 떨어진다 싶은 영화들은 비닐포장도 벗기지 않고 바로 반품해버리는 일이 허다한 모양이다. 간혹 단골 대여점의 주인아저씨를 감언이설로 유혹해―"이거 진짜 재밌다니깐요.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애걸과 구라)." "XXX 배우 나오는 건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과장과 협박)." 기타 등등― 보고 싶은 비디오를 극적으로 갈취하기도 하지만 물론 그런 행운이 쉽게 찾아오는 건 아니다. 게다가 나 이후로 한 달 간 아무도 대여하는 사람이 없어 주인 아저씨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았다는 후일담도 곁들여 두겠다.
한편 예를 좀더 들어보자면 이렇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원더랜드> 출시 소식을 듣고 비디오 대여점을 전전했던 무수한 사람들 중 아직 손에 넣었다는 행운아를 만나보지 못했다. 디킨스 원작에 <엠마>의 더글라스 맥그래스가 메가폰을 잡은 <니콜라스 니클비>도 마찬가지. 출시작 목록에는 버젓이 올라있건만 아무리 다리품을 팔아도 속절없이 허탕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던 거다. 오늘 소개할 <스튜어디스>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부천영화제에 다녀왔거나 가고 싶어도 일정(혹은 금전) 문제 때문에 눈물을 삼키며 프로그램만 뒤적여야 했던 사람들에게 홍콩 영화 <스튜어디스>는 꽤 낯익을 작품이다. 흡혈귀가 피를 바라듯 기발함과 '깨는' 감성을 찾아 헤매는 부천의 관객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제법 쏠쏠한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었다. 국내에는 <메이드 인 홍콩>의 양아치 차우로 알려진 이찬삼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도 매력포인트. 마치 크라잉넛 안에 섞어놓으면 누가 멤버고 누가 아닌지 골라내기 상당히 까다로울 것 같은 외모도 귀여웠지만 차우는 의리와 깡, 그리고 약자들을 돌보는 황금 같은 마음이 더 매력인 캐릭터였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우선 간략한 줄거리부터 소개. 여자 꼬시는 게 취미인 껄렁쇠 마소강(이찬삼)은 매일 밤 빨간 옷을 입고 빨간 하이힐을 신은 스튜어디스에게 비행기 모형에 찔려 살해당하는 꿈을 꾼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작업에 들어갔다 전설적인 조직폭력배의 딸과 엮여 단단히 혼쭐이 나고, 결국 그녀의 연인, 아니 다기능 리모콘 노예로 전락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유레이라는 이름의 일본인 스튜어디스가 이사왔으니, 아리따워라 그 미모. 늘 조국의 복수를 위해 일본 여자와 ‘한 번 한다’는 꿈을 간직해 온 마소강은 아니나다를까 그녀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실수했던 것 같다. 새빨간 입술을 입이 찢어져라 벌리고 웃어대고 송곳 같은 하이힐 신고도 100미터를 10초 내에 주파하는 듯한 이 일본아가씨, 아무리 잘 봐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더란 말이다. 그리하여 불쌍한 남자 마소강은 “내 딸 울리면 ‘중요한 부분’―그러고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서‘그것’을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라고까지 표현했었다―을 싹둑 잘라버리겠다”고 호통치는 조직 보스와 <링>의 사다코의 스튜어디스 버전이라고 할 만한 유레이 양쪽에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부천 상영당시의 반응만 떠올려보더라도 <스튜어디스>는 객석으로부터 귀를 찢는 비명과 박장대소를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 꽤나 흐뭇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 굳이 비교하자면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이나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같은 작품들과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육체를 난자하는 생생한 질감이 고통스러워 눈을 질끈 감고 싶은데도 불구, 순간순간 참을 수 없이 폭소가 터져 나오는 경험.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내 마음속에 내재해있는 심술궂은 본능을 싫어도 계속 자각하게 만든다. 동류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축제하듯 영화를 관람하는 영화제와 함께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웃어댈 수 있는 내 방 안은 이런 영화와 어울리는 두 시공. 그런 면에서 <스튜어디스>는 비디오로 보기에 꽤나 제격인 영화다.
사실 <스튜어디스>는 비교대상으로 내건 <오디션>이나 <지구를 지켜라>에 비해 훨씬 가볍고 경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가벼운' 영화에 곰씹어볼 만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 주인공 마소강은 평소 대단한 시나리오 작가나 되는 양 행세하고 다니지만 실상은 업무시간에 농땡이나 치는 방송국 막내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숱한 여성들을 만나고 또 지나쳐 가는 밤거리 뿐. "내 소원은 일본 여자랑 한 번 자보는 것"이라고 수치심도 없이 떠벌리는 이 남자의 시시함이란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또한 비통하다.
한편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꿈이 부서져버리자 스튜어디스처럼 차리고 핏빛 선연한 행각을 벌이는 유레이는 또 어떤가. "한번쯤 스튜어디스를 꿈꾸어(욕망해)보지 않은 자 어디 있는가?"라는 부천영화제 김영덕 프로그래머 말마따나 <스튜어디스>는 제복을 입고 하늘을 나는 스튜어디스를 꿈꾸고 또 욕망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기도 하다. 그림으로 그린 듯 상냥한 미소, 미끈한 다리로 또각이며 걷는 스튜어디스들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고상하기보다 처연해 보인다. 슈퍼스타나 백만장자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군상들의 욕망의 표상. 우리, 불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