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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노가다만 뛰던 기계가 자신을 무시하던 인간을 죽였다. 하지만 그 사건을 두고 일단의 사람들은 인간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한 기계 역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공생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분단을 하게 된다. 기계(A.I. 기능이 탑재된)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세우고 '신용'으로 인간 세계를 잠입해 들어간다. 기계들이 만드는 공산품이 인간의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경제력을 장악한 그들의 화폐가 인간의 화폐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마치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서 "신용이 화폐 가치를 결정한다"는 걸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워쇼스키 형제들은 이것저것 일본의 문화 생산품을 참으로 많이도 차용했다. 이 신용과 배신에 관한 기계들의 가치관은 영화 마지막 장면 매트릭스 설계자의 대사 '내가 인간인 줄 아나?' 라는 말의 근원이다. 적어도 기계들은 신용이 있고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매트릭스는 인간이 만들었다?
기계 군단과의 전쟁에서 연패를 거듭하는 인간들, 마지막으로 기계의 에너지 공급원인 태양을 막기 위해 '하늘 봉쇄작전'에 들어간다. 하늘을 막아버리면 지들이 어쩔꺼야. 단순하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운전하며 '휘발유가 떨어지면 지가 멈추겠지' 하는 생각과 같다. 기계들은 생존을 위해 대체 에너지를 찾게 되고 인간을 그 에너지원으로 쓰게 된다. <매트릭스>에 나왔던 배양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메트릭스도 에너지원인 인간의 끊임없는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결국 인간이 그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문제는 인간이고 결과는 매트릭스다. 여기서 혼란스러워진다. 인간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희망(하늘)을 버리고 미필적 고의로 기계의 노예가 된 그들이 해방된다 한들 <원더풀 데이즈>처럼 찬란한 하늘을 다시 일구고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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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처음 <매트릭스>를 보고 나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식물인간,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평생 행복한 꿈 속에서 살아간다면 팍팍한 현실보다 나쁠 게 있을까. 그는 진짜 ‘매트릭스’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거기서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지 않을까.
사실 <매트릭스>는 심오한 철학적 논쟁 보다는 '총알 피하기', '학처럼 날아 한방에 골로 보내기' 등의 영상 충격만이 복제되기 바빴다. 브리짓 무비가 된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티저포스터처럼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을 기다리게 만들었고 전세계 동시 개봉이라는 사상 초유의 이벤트를 통해 만난 3편은 전작의 세 편(<애니 매트릭스> 포함)을 아우르고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3편은 괴멸 직전의 시온을 지키기 위한 전투, 기계들과 말 그대로 '쇼부'를 보기 위해 달려가는 네오의 이야기로 구성되었고, 더욱 업그레이드 된 프로그램 '슈퍼 스미스'와의 대결로 끝을 맺는다. 시온 전투 군단의 APU 기갑 부대와 문어 로봇 센티넬과의 전투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백미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상상력의 범주에서 해방되어 나온 영화, 그 결과물이 <매트릭스 3 레볼루션>에 고루 녹아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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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가 지키고 싶어했던 단 한 사람 트리니티, 모피어스의 가슴을 아리게 하면서도 선 굵은 감정들을 드러냈던 니오베, 네오를 따라 전투에 나선 남편을 원망하고 투정했던 지. 이들이 2편까지 나왔던 여성들의 모습이다.
'지'는 남편이 없는 집(시온)에서 가장(전투원)이 되어 침략자와 맞서는 여성으로 변한다. 모피어스의 주변부 인물이었던 니오베는 그를 리드하며 신기에 가까운 비행술로 시온을 구한다. 트리니티는 '그'인 네오를 성지까지 안내해준다. 전편까지는 예수의 애인 쯤으로 비추어졌던 트리니티가 <매트릭스 3 레볼루션>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이자 인도자처럼 느껴진다.
이런 세 여성의 움직임이 시온 전투의 결과를 제어하게 된다. '여자는 남자의 희망'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여자가 인류의 희망이 된 듯 하다. 뚜렷하게 자기 몫을 다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매트릭스는 레볼루션의 길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결말은 이 캐릭터들처럼 뚜렷하지 않다. 과연 인간들은 해방되는 것인지. 매트릭스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인간과 기계는 종전을 하는지 아니면 휴전을 하는 것인지. 해석의 방향은 다양하지만 느낌은 한가지다. 모든 인류가 지금 처한 상황이 이 영화의 결말과 다르지 않다는 점. 불안한 행복이라는 점이다. 어찌 행복이 영속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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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전세계 동시간 개봉이지 우리는 일본 동경 표준시에 개봉되었다. 중학교 때인가 배운 그리니치 천문대 어쩌구 하는 표준시조차 동경 기준시인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일본의 그늘 아래 일본 시간에 맞춰 사는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하게 해준 이벤트다. 매트릭스의 문자가 일본 문자였다거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오마쥬했다는 마지막 장면조차 <아키라>를 더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것은 <매트릭스>에서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들보다 충격적이었다. <킬빌 Vol.1>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런 느낌을 가질테지만, 세계에 드리워진 일본 문화의 파워를 체감할 수 있다.
성서를 모체로 태어난 영화인 <매트릭스>는 '부활' 이후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장치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희생해 산화하는 장면은 '시작이 있는 곳에서 끝을 발견하고 길을 찾는' 큰스님의 열반을 생각하게 한다. 다국적이고 다종교적인, 그래서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으로 빠져들 수 있는 영화, <매트릭스>의 3편은 어쩌면 철학적 레볼루션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