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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값>은 취직을 앞둔 실업고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사람의 외모에 함부로 가치를 매기는 편협한 사회를 비판한다. 성형수술을 장려하고,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건 몸무게라며 학생들을 닥달하는 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인권영화라는 타이틀에 흔히 가지게 되기 쉬운 편견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재미난 영화다. 소위 '교훈적인 영화' 같지 않기는 뒤를 잇는 정재은 감독의 단편도 마찬가지. 신상이 공개된 후 사람들의 차가운 질시를 한 몸에 받는 성범죄자를 다룬 <그 남자의 사정>은 디스토피아를 싸늘하게 담아낸 SF 같다.
한편 <대륙횡단>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김문주의 일상을 살갑게 따라간다. 장애인으로 살기 참 불편한 나라 대한민국. 정말이지 이 곳에선 사랑, 우정, 취직 뭐 하나 순탄치가 않다. <얼굴값>의 남자는 주차 매표원에게 "이런 데서 일하긴 아까운데"라는 한 마디를 무심히 던지고 두 사람의 인연은 상상 못할 결말로 이어진다. 한편 <신비한 영어나라>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끔찍하기까지 한 일들을 자행하는 영어공화국 한국의 학부모들을 담아낸 영화. 정신박약으로 오인돼 정신병원에 6년 4개월 간 수감되었던 네팔 노동자 찬드라의 기구한 이야기를 다룬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이 냉혹한 나라의 일원인 우리 모두의 경종을 울릴 만 하다.
상영 전 총제작을 담당한 이현승 감독을 위시해 정재은, 박진표, 박찬욱 감독과 배우들(김문주, 변정수, 백종학, 정애연), 인권위 김창국 위원장 등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건넸다. 김위원장은 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제 1호 인권영화이기도 한 <여섯 개의 시선>을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 차별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됐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밴쿠버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기도 한 <여섯 개의 시선>은 오는 11월 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자간담회와 무대 인사에서 캐치한 배우, 감독들의 핵심적인 한 마디들은 아래 간추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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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주인공이 네팔에 있는 관계로 무대 위에는 못 모셨다. 사실 찬드라씨보다는 등장한 모든 한국인이 주인공이며, 현재 찬드라 대 대한민국의 소송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사실 "찬드라 대 대한민국"을 제목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법적인 부분을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뜻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가 여섯 편이나 되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을 어쨌든 한 편은 건질 수 있다는 게 <여섯 개의 시선>이란 영화의 좋은 점 아닐까(좌중 웃음).
정재은 감독: 많은 스탭들이 교통비 수준의 보수만 받으면서 좋은 의도 하나로 뭉쳐 일했다. 그 덕에 오히려 서로 스트레스며 압박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중한 기억이다.
Q: 영어 발음이 좋아지기 위해 설소대 수술을 받는 아이의 모습을 비춰내는 <신비한 영어나라>는 상당히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박진표 감독: 작년 <죽어도 좋아>에 이어 올해도 등급 때문에 가슴을 졸였던 게 사실이다. 자식의 인생을 먼저 결정해버리는 오만함은 가장 큰 인권침해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눈감지 말고 똑똑히 봐주길 바란다.
Q: 개봉까지 하게 됐는데, 흥행에 대한 걱정은 없는가?
이현승 감독: 타작품에 비해 손익분기점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수익을 남기는데 거의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은데(좌중 웃음). 작업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진숙 프로듀서: 모쪼록 흥행이 잘 되어서 <여섯 개의 시선 2>까지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참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반 시사도 많이 기획중이다.
Q: 주제는 개별로 받았나?
이현승 감독: 인권위에 명시된 열 여섯 가지 차별에 관한 항목 중 감독이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했다. 순서의 경우에도 사전에 협의했고. 예컨대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는 재미있기 때문에 맨 앞에 배치하는 것이 관객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결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2차, 3차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인권이라는 교훈적 주제에만 천착하지 않고 감독에게 각각 일임해 취향과 개성을 살리게 한 것이 <여섯 개의 시선>이 주목받은 이유이자 개봉에까지 온 힘이라고 생각한다.
Q: 변정수에게 질문. 출연하게 된 계기는?
변정수: 정재은 감독의 단편 <그 남자의 사정>은 내게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다. 사실은 나도 얼마 전 인권침해를 직접 겪은 적이 있다. 어떤 사이트에 내가 죽었다는 날조 기사가 올라왔고, 그 사건으로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었다. 우리 같은 직업이야 원래 다수의 사람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직업이지만 나의 권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자주 느끼고 있다. 이 영화에 참여한 것도 그런 계기에서 비롯됐다.
Q: 실제로 차별 받은 경험이 있는가?
이현승 감독: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 치고 차별 받은 경험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감독들이 사재를 털어서까지 이 프로젝트에 매달린 이유도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Q: 정재은 감독에 질문. 성범죄자의 인권, 미래사회의 조망, 어린이들의 인권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영화 안에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정재은 감독: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인권침해의 정의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성범죄자 신상공개라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풀 경우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영화적 재미도 떨어질 거라고 봤다. 이를테면 우화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거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성정체성이 모호해 보이는 건 의도인가? 라는 질문에) 사람의 특성은 너는 남자, 나는 여자 하는 식으로 뚜렷이 나누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느낌이 나도록 의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