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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생생한 감정의 질감을 체험하기 위해 인형극을 관람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인형극의 무대는 인형사와 이야기꾼, 연주자가 존재하는 극히 제한된 세계다. 쉽게 말해 <반지의 제왕>이나 <살인의 추억>을 인형극으로 구현하는 건 그다지 현명한 일이 못된다. 뭐, "하려고만 하면 왜 못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이야기. 물론 거대함이나 리얼리티만이 미덕은 아니며, 인형극의 관객은 오히려 틀 안에서 섬세하게 정제된 미학을 즐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화의 외피를 쓴 <돌스>는 어찌 보면 인형극에 더 가깝다.
한 여자(마츠바라 치에코)는 함께 도시락을 먹던 공원 벤치에서 40년 동안 떠나간 남자(미하시 타츠야)를 기다린다. 아이돌 가수(후카다 쿄코)가 사고로 얼굴을 다치고 은둔해버리자 광적인 팬(다케시게 츠토무)은 자신의 눈을 찌른다. 남자(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이별을 선고하자 여자(칸노 미호)는 미쳐버리고, 결국 두 사람은 빨간 끈―운명을 상징하는―으로 서로의 허리를 동여맨 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서로 희미하게 얽혀있는 <돌스>의 여섯 남녀는 영화가 비추는 압도적인 풍광 안에서 알록달록한 무대용 의상을 차려입은 인형들 같다. 붉은 단풍 아래 함께 도시락을 먹거나 나란히 앉아 늦여름의 쓸쓸한 바다를 바라보고, 혹은 흰 눈밭을 그저 걷는 연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각기 연령도, 놓여있는 상황도 전혀 다른 세 쌍의 연인들은 끝내 서로를 마주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원래 사랑이란 이기적인 환상이다. 썩기 직전의 과일이 가장 맛있고, 지기 직전의 꽃이 가장 예쁜 것처럼 모든 아름다움은 잔혹함을 내포한다." 그렇게 일갈하는 기타노 다케시는 사랑의 절정의 순간을 그대로 소멸과 이어놓았다. 엄격히 계산된 회화적 프레임과 요지 야마모토의 의상들. 내러티브에 앞서 만듦새에 경탄하게 되는 <돌스>는 아름답지만 허무하다. 영화의 탐미주의는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면 장면이 인상으로 선명해지는 건 기묘한 경험이다. 쓸쓸해진 기분으로 객석을 뜰 즈음엔 다자이 오사무 作 <사양>의 한 구절이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사랑, 이라고 썼더니 더 이상 아무 것도 쓸 수 없게 돼버렸다." 말의 틀 안에 갇혀, 운명의 손아귀에 붙들려, 인간도 따지고 보면 인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