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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엎는 명랑한 아이디어와 막판 한방, 다시 말해 중/고딩 시절 상하로 나눠진 국사책을 밑줄 쫙쫙 그며 외어야만 했던 도도한 역사를 안 도도한 역사로 탈바꿈시킨 채 책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끄집어냈다는 점과 후반부 대의명분에 휘감긴 계백(박중훈)의 칼에 억울?하게도 죽음을 맞이해야한 했던 아내(김선아)의 예상치 못한, 그러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다가온 심히 인간적인 항변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는 말이다.
백제를 멸하고자 당나라와 신라가 나당 연합군을 결성, 신라의 지장 김유신(정진영)과 백제의 명장 계백이 황산벌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서기 660년을 다룬 영화는, 기존의 정통 대하 사극의 무게감과 엄격함을 거세하고자 제1의 방책으로 사투리를 적극 활용한다. 신라는 경상도 방언을 백제는 전라도 사투리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의미가 상당히 거시기 한 거시기를 주 핵심 단어로 팍팍 밀어줌과 동시에 일개 평민에 불과한 병사(이문식)의 이름으로 정해 부각시킴으로써 <황산벌>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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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사적 사건인 황산벌 전투에 임했던 그네들이 각기 자기들 지역의 방언을 쓰며 혼전을 벌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발상에 맞춰 재구성된 <황산벌>은, 명랑한 아이디어에 의해 구축된 설정에도 불구하고 칭찬도 길게 반복하면 반감되듯 거친 사투리를 탄탄하지 못한 몇몇의 에피소드 안에서 너무 질질 끌며 과다하게 소비함에 따라 그리 뒤로 나자빠질 정도의 포복절도를 제공하지 못한다.
자칫 단순한 말잔치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전반부의 아쉬운 코믹스러움은 진지함의 분위기로 돌변하는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조금씩 상쇄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계백의 처자식이 지아비에 의해 숨통이 끊기는 장면과 신라군에 의해 참수를 당하는 계백의 비장미스런 최후의 모습에 이르면 묵직한 그 무엇이 중반까지의 어정쩡한 느낌을 압사시키고 보는 이들의 가슴속을 후벼 파며 파고든다. 당근, 이 같은 혁혁한 성과를 일궈낼 수 있었던 동력은 박중훈의 갑빠 충만한 호연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의 유머에 대한 기대감, 소탐대실의 의미를 되살려 일단은 접으시는 게 상책일 게다.
결국, 이런 전차로 인해 <황산벌>은 괜찮은 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극대화한 사투리의 구사만으로는 약발이 서서히 떨어질 것임을 간파하고 후반부 감동과 의연함이라는 말뚝으로 마무리를 내리박은 제작진의 돌파구가 적중한 것이다. 앞썰했듯 복받쳐 통곡을 하며 목 놓아 울부짖는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예기치 못한 김선아의 연기는, 그중에서도 영화의 백미로 우뚝 솟아 있으니, 그녀의 전작을 떠올리며 좀 거시기한 머시기한 글 쓰는 놈의 단견이 아닐까 속단하지 마시고 꼭들 그 장면만큼은 졸지 말고 챙겨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