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Deep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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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 마가렛은 해군 장교인 남편이 바다로 나가있는 동안 시아버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이끌고 평안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앞둔 얌전하고 착실한 맏아들 보가 게이 클럽 딥 엔드의 주인이자 별로 질이 좋지 못한 사내인 다비와 사귀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걱정거리. 그녀는 다비에게 아들을 만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다비는 그날 밤 마가렛의 집을 찾아온다. 보는 다비가 마가렛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고 다비와 싸우고, 마가렛은 다음 날 아침 집 앞 호숫가에서 다비의 시체를 발견한다. 놀란 그녀는 몰래 시체를 호수 한가운데 버리는데, 며칠 뒤 알렉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보와 다비의 정사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건네며 5만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테이프를 경찰에 넘기겠다고 협박한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만 보면 <딥 엔드>는 흔한 스릴러에 불과하다. 가령 우리는 이 줄거리를 보고 레베카 드 모네이, 룻거 하우어 주연의 <레베카의 약점(Blind Side)>같은 영화를 찾아낼 수 있다. 교통사고를 낸 부부가 수수께끼의 사내에게 협박당한다는 내용의 <레베카의 약점>이 낡았다면 좀 더 유명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어떤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실수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 이외에도 머리 좋은 팬들께서는 한 바가지나 되는 다른 영화들의 이름을 퍼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딥 엔드', 틸다 스윈튼, 고란 비즈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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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개심했다고나 할까. <딥 엔드>는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평범한 주부에게서 삥이나 뜯어내는 스릴러가 되려다 돌변해 그녀를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숭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딥 엔드>는 다른 평범한 스릴러들에게 거침없이 이별을 고하는데, 알렉 역의 고란 비즈닉은 영화 중반부터 등장하고 영화 자체가 평범한 주부인 마가렛의 이야기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마가렛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은 연기가 좋다고나 할까, 하여간 강하게 사람을 빨아당기는 힘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고란 비즈닉보다 틸다 스윈튼을 훨씬 오래 가슴에 남기지 않을까 한다. 고란 비즈닉은 처음 등장할 때를 빼고는 별로 야비해 보이지 않는다. 선뜻 선뜻 야비함이 드러나야 하는데... 매우 주관적이지만, 감점 요인이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호숫가에 살며 때가 되면 아이들을 차에 태워 싣고 다니는 주부 마가렛은 협박을 당하는 와중에도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애쓴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한 중산층 주부로서의 삶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알렉은 다르다. 마가렛의 무엇에 이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비열한 협박범에서 돈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회개하고 희생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좋은 작품들, 특히 만화에서 이런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작가의 그림체도 연재 시작과 끝을 비교하면 많이 다르듯, 주인공도 처음과 끝이 같지 않은 것 같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인물보다 성장하고, 변화하고, 각성하는 인물이 주인공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히 알렉이 주인공이다. 마가렛은 운명에 휘둘리지만 알렉은 자신의 선의로 그녀의 운명을 바꾼다.
| '딥 엔드', 고란 비즈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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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이끌어오던 스릴러는 알렉의 보스 칼리 네이글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급박하게 돌아가고 알렉의 마지막 선택은 충격적이었다.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그건 분명... 그녀를 구하기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말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I think... I'm not... 무엇이 아니라는 거죠?
추리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못했지만, 가끔씩 추리소설을 악연의 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진 티어니(Gene Tierney)의 이야기.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1940년대 헐리우드 여배우 진 티어니는 농아에 정신이상이었던 첫딸 다리아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녀가 임신했을 때 풍진에 걸린 게 원인이었는데, 후에 그녀는 자신의 열렬한 팬이라는 한 여자를 만나고, 풍진에 걸린 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의사 몰래 검역소를 빠져나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진 티어니의 비극이 살인까지 가진 않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는 그녀를 모델로 한 여배우가, 자신에게 풍진을 옮긴 팬을 독살한다.
이렇게 기막힐 수도, 어쩌면 웃음이 나오도록 통속할 수도 있지만, 우리 또한 거미줄같은 악연과 탐욕에 얽혀 있다. 우리는 주위에서 숱하게 그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며 비록 겉으로는 그들을 비웃고 있을 지라도, 우리 또한 그들보다 결코 많이 현명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영원히 삼가고 두려워해야 하겠지.
들은 이야기인데, 만약 모래수렁을 만나 몸이 빨려들어갈 때 긴 막대가 있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악연과 탐욕이 인간을 삼키는 수렁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지혜와 힘? 아니면 타인의 선의와 희생? 어쩌면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보고 사유하지 않았는가 반성하며 글을 맺는다. 영화는 즐거움의 신에게. 만드는 이의 몫은 고뇌, 보는 이의 몫은 기쁨과 웃음, 카타르시스. 분석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