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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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말부터는 해야 할 듯싶소. 행실이 바르기로 소문난 필자 거짓됨 없이 말하건만, 정말이지 고품격 섹시 사극 <스캔들> 인물들의 심히 방탕한 품행에 넋을 조금은 잃었다오. 그것뿐이 아니라오, 화려함이 넘실대는 그네들의 복식 스타일과 양식미 도드라진 조선 시대의 재현은 오호~쾌재라!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니 할 수 없소.
영화는 그대들이 알고 있듯 저 멀리 프랑스에 서식하고 있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고 있소. 다시 말해, 살롱 문화라 불리는 18세기 말 사치스러움이 극에 다른 프랑스 상류사회의 모습을 우리네 조선 사대부 사회로 고스란히 옮겨와 각색한 사극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오. 뭐, 그간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 등 서구의 코쟁이들이 사랑 안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관계를 여러 가지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서간체 문학의 당 소설을 바탕으로 여러 편의 영화를 빚어왔던 게 사실이요. 해서, 적잖은 치들은 이렇게 일갈했다오 “과연, 저네들의 그것을 우리네의 그것으로 변조해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오! 당치도 않소, 이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요, 제발 이쯤에서 아서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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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장인의 떡잎이 시나브로 내비치기 시작한 이재용 영화쟁이는 그들이 예의 걱정해 마지않던 적잖은 충돌을 생경하긴 하지만 모둘자리 얕은 산세와 같은 조화로움의 지평으로 사뿐히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오. 정말 감축할 일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대는 어떻게 헤아릴지 모르겠구려, 어~허!
자고로, 조선남녀상열지사든 스캔들이든 남녀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통할 수 있다는 옛 현인들의 말씀이 재차 아로새겨지는 순간이라 아니 말 할 수 없겠소. 거참!, 정말이지 쇠주일잔이 간절하게 생각나는구려.
18세기 말 정조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스토리는 대충 이렇소. 하루가 멀다 하고 창기를 불러다 음주가무와 풍류지도를 나누는 누가 봐도 딱 한량이기 십상인 조원(배용준)이라는 친구가 있다오. 그리고 그에겐 사대부 집안의 지엄하신 기품이 열두 폭 한복 치맛자락과 함께 출렁이는 사촌 누이 조씨 부인(이미숙)이 있는데, 이 둘은 발칙하게도 소싯적 서로의 첫 사랑 상대였소. 게다, 조선 시대의 근간을 이루는 엄숙한 유교 문화를 희롱하듯 이들은 정절이네 남녀유별이네 하는 것들 따위는 별반 신경 쓰지 않는 공인된 작업 선수라 하니, 참으로 조씨 가문의 대들보라 아닐 할 수 없소.
어쨌든 그리해, 이들은 또 하나의 거사를 작당 모의하니 그게 다른 것이라 바로 열녀문까지 하사 받은 청상과부 숙부인(전도연)의 굳게 닫힌 그 문을 조원이 열어 제치면, 자신의 몸을 ,탐하고 싶어 하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조원에게, 단박에 내주겠다는 내기를 했다는 그려. 역시나 그들다운 당찬 계략이라 볼 수 있겠소.
우선, <스캔들>이 볼 만한 대중영화라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비롯되오. 안정된 연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낯설음이 상당부분 거세된 대사의 치고받음과 “이다지도 우리네 조상의 생활풍습이 화려하고 세련될 줄이야”라는 감탄구가 부지불식간 나올 만큼 멋들어지게 재현한 조선시대의 예스럽고 럭셔리한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요. 한 마디로 구성진 해학미가 절로 와 닿은 대사의 청각적 즐거움과 꼬질꼬질 맨날 그게 그거인 듯한 답습된 사극을 벗어나 화려함의 파노라마질에 숨이 막힐 지경인 시각적 충만감이 입장료 값은 충분히 한다는 말씀이오.
이를테면, 주윤발 코트자락 부럽지 않은 치맛 및 도포 자락의 패션 코드와 마틴 스콜세즈의 <순수의 시대> 못지않은 우아함의 향연, 질박한 조선백자와 같은 요강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소품의 꼼꼼함, 그리고 “사내가 참 다정스럽기도 하지요”, “꽃봉오리와 같은 저 아이 정도면 어르신네들의 어여쁨을 받지 않겠습니까?”와 같은 화들짝스런 말투가 심히 영롱하게 가슴살에 내리 앉는 다는 것이지요. 당시가 좌식 문화였듯 그것도 아주 편안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말입니다.
또한 쉽사리 떨칠 수 없는 영화의 기이한 매력은 바로 이병우 악사의 음악이지요. 청명한 아침 몸단장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의 정갈한 자태가 나올 때 우리는 예상했습죠. 으레 그랬듯 거문고 가야금의 현 튕기는 소리를. 허나 이 어찌 된 일인지 <스캔들>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흐드러지며 나오는 것이 아니겠소. 또 허나, 정작 문제는 그게 소주에 피자 먹듯 어색하기는커녕 너무 자연스럽게 그럴싸한 시청각적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이오. 전언했듯 서양 소설의 아우라를 우리네 한국식에 껴 맞추면서 일어나 수 있는 어긋남으로 좌불안석한 혹자도 있었지만 보다시피 대견스럽게도 <스캔들>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그러한 충돌을 잘 보듬어 안아 파릇파릇 신선한 매무새로 잡아놨다는 것이요.
그렇다고 당 영화 <스캔들>에 흠이 없는 건 아니오. 웃음이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초.중반을 넘어서면 짐짓 심각한 모드의 멜로풍으로 영화는 흘러가기 시작하오. 하지만 조원과 숙부인의 애절한 정 나눔의 심사가 다소 놀랄만한 컷까지 등에 업고 등장함에도 보는 이의 뼛속까지 사무치지는 않소. 더불어 당대의 유교문화를 도발적으로 거스르는 우짜고저짜고스런 과감한 문제의식을 <스캔들>이 전해주었다는 찬사 역시 동의를 하긴 어렵긴 마찬가지오. 이유는 간단하오. 위의 장황하게 늘어난 영화의 미덕이 양질 적으로 영화 내내 너무 많이 부각돼 약간의 역효과가 났다는 것이 본인의 소견이요.
어찌됐건, 지금까지 세치 혀가 나빌레라 얘기해왔소만 그것으론 많은 것을 전달하기엔 요령부득이 아닌가 싶소. 하니, 야심한 시간이든 안 야심한 시간이든 한적한 틈이 존재한다면 주변의 지인과 함께 영화의 감흥을 몸소 느껴볼 겸 꼭 한번 극장으로 마실 나가길 내 바라오. 자시가 넘어서 그런지 비록 죽마를 나누는 소주가 있다하나 더 이상은 옆구리의 쓸쓸함이 한계에 달아 붓을 들고 있을 기력이 없소. 그럼 이만 줄이니 당신도 편히 쉬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