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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자유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걸쳐있는 여백을 상상해보는 것이야말로 '카우보이 비밥'이 가진 가장 큰 매력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을 이곳저곳 옮겨다니고, 그 배경만큼이나 스토리라인도 계속 다양하게 움직이며, 작품은 그런 에피소드들 안에 있는 설정들을 좀처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작품 속의 세계관을 알기 위해서는 중반이후까지 봐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 제목부터 대중 음악 장르를 인용한 작품답게 수많은 대중문화 코드가 숨겨져 있는 것이 '카우보이 비밥'이다. 그래서 그만큼 불친절하고, 어떻게 보면 뛰어난 연출력에 비해 스토리의 밀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카우보이 비밥'은 오히려 에피소드에 숨겨진 여백을 마음껏 상상하고, 작품 속의 대중문화 코드를 스스로 발견함으로서 누리는 재미가 단순히 스토리만을 즐기는 것 이상으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카우보이 비밥'에 대해 알고 있으면 좋을 몇 가지 상식들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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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 속의 모든 설정은 게이트로부터 시작된다. 게이트란 일종의 공간 이동 장치로서 이것을 통해 인류는 게이트 안을 빠른 시간 안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게이트의 개발을 통해 인류는 태양계의 전 행성으로 옮겨다닐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각 행성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게이트는 동시에 재앙의 근원이기도 하다. 게이트가 처음 등장한 2022년, 실험 중이던 게이트가 폭발함으로서 달이 거의 파괴되어 그 운석이 지구를 덮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지구가 황폐화된 것이다. 'Bohemian Rhapsody', 'Sympathy of Devil'등의 에피소드는 게이트로 인해 인생의 변화를 겪게된 인물에 대해 다루고 있다.
레드 드래건
레드 드래건은 한때 스파이크가 몸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계 거대 조직이다. 이 조직내에서 스파이크는 현재 자신의 숙적인 비셔스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고, 자신의 유일한 연인 줄리아와의 사랑을 엮어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비셔스와 스파이크의 과거가 어떤 것이었는가는 'Ballad of Fallen Angels'를 제외하면 좀처럼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이 레드 드래건이라는 조직은 '레드 아이'라는 마약을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원래 게이트 이용시 생기는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한 안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카우보이 비밥'의 DVD 타이틀에 나온 설명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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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샷'은 카우보이들을 위해 남녀 호스트인 주디와 펀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사실 비밥호의 카우보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현상범을 잡아 제대로 돈을 챙기는 경우는 그다지 없지만,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 등장해 각 에피소드의 범인들을 알려주며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 또한 프로그램 자체가 웨스턴 문화의 분위기를 띄고 있어 이 작품이 '카우보이'에 대한 작품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
이름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가 담겨있는 작품답게 이 작품에는 범상치 않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우선 첫 번째 에피소드인 'Asteroid Blues'부터 등장해서 수다를 떠는 세 노인의 이름은 각각 안토니오-카를로스-조빔으로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의미하고, 'Waltz for Venus'에서 스파이크에게 잡히는 삼인조 수배범들의 이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도널드 덕의 조카로 나오는 휴이-루이-듀이이다. 또한 'Stray
Dog Strut'에 등장하는 악역 압둘 하킴은 이소룡의 영화 '사망유희'에 출연한 농구선수 압둘 자바를 패러디한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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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에피소드라는 말 대신 세션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를 표시한다. 그만큼 작품이 음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 세션들은 음악과 관련있는 제목들로 채워져 있다. 퀸의 'Bohemian Rhapsody', 롤링 스톤즈의 'Sympathy of Devil', 에어로스미스의 'Toys in Attic'등의 곡들이 제목으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Mushroom Samba'처럼 음악 장르와 제목을 연관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제목들과 세션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특히 'Heavy Metal Queen'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달리는 헤비메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소드 피시 II
스파이크가 타고 다니는 모노 레이서. 설정상으로는 엄청난 스피드와 소형 전투기 답지 않은 상당한 화력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밖에도 페이가 타고 다니는 것은 VTOL, 제트가 타는 것은 해머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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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제트, 페이, 에드외에 비밥호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개. 웰슈코기종으로 겉보기에는 보잘것없으나 알고보면 실험에 의해 길러진 개로, 데이터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 지능은 인간을 능가한다고 할 정도. 그러나 사실 작품 전체에서 그다지 하는 일은 없다.
이소룡
앞서 언급한 'Stray Dog Strut'에서 스파이크는 쌍절곤을 돌리며 아예 이소룡의 출연작인 '맹룡과강'을 언급하기도 한다. 또한 스파이크가 작품 도중 쓰는 무술은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제작진은 이소룡과 루팡 3세에서 스파이크의 캐릭터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칸노 요코
'카우보이 비밥'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이상으로 이 작품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칸노 요코. 이미 잘 알려진대로 CF와 애니메이션등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만들어낸 그녀는 '카우보이 비밥'에서 그 당시까지 자신의 최고작들이라 할만한 애니메이션 음악을 만들어냈고, '카우보이 비밥'의 완성도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칸노요코의 음악이 결합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인 테마곡 'TANK!'를 비롯해 최근 아이들이 바닥에 색칠을 칠하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은 CF의 BGM으로 쓰인 'EGG & I'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곡들. 또한 칸노 요코는 이 앨범의 최고 명곡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Green Bird'를 자신이 직접 부르기도 해(그러면서도 크레딧에는 가명을 올렸다) 자신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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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카우보이 비밥'은 모든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타이틀과 팬 투표와 감독의 취향에 따라 고른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컴필레이션의 두 종류로 나와있다. 이중 컴필레이션은 스테레오로 지원됐던 '카우보이 비밥'의 사운드를 재믹싱해 5.1 채널로 만든 것. 어지간한 영화 이상의 화려한 액션신이나 우주 비행씬이 있는 작품인만큼 이 컴필레이션 발매는 상당히 기대를 모았는데, 타이틀의 완성도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나와 팬들을 열광시킨 바 있다. 특히 무수한 총격전이 오간 뒤 '카우보이 비밥'의 대표곡중 하나인 'Green Bird'가 등장하는 'Ballad for Fallen Angel'는 그야말로 압권.
느와르
다양한 장르와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카우보이 비밥'에서 그래도 공통되는 어떤 정서를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느와르로 대표되는 고독과 허무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allad for Fallen Angels'나 'Juppiter Jazz'처럼 스파이크의 스토리에서는 물론이고, 'Sympathy of Devil'이나 'Bohemian Rhapsody'처럼 호러와 코믹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응용하고 있는 두 세션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제트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Black Dog Serenade', 'Ganymede Elegy'등의 세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느와르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허무한 남자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을 보여준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카우보이들은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쿨하지만 끈끈한, 사람간의 정
을 소중히 여기지만 결국 고독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카우보이 비밥 전체를 감싸는 정서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 넓은 우주에 당신이 진정 마음을 둘 곳은 어디인가? See you space cow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