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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어려움과 신병비관이 가장 큰 원인.
경제난을 겪은 경우 사체가 가장 깨끗하고, 애정문제인 경우 가장 훼손이 심함. (자살한 사체의 경우, 마지막 순간에 살고 싶다는 욕구와 훼손 정도가 정비례한다던가...)
이상은 우리나라 자살에 관한 정보와 속설이다.
혹자는 선진국형 자살은 좀 더 형이상학적이네 어쩌네 하지만,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
실존에 관한 고민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선 두 손 번쩍 들지 않겠는가? IMF 때와 거의 맞먹는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카드 빚을 갚아 줄 테니 목을 내놓으라면 얼씨구나 좋다고 달려들 사람, 모르긴 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게 없나 보다.
자살을 목적으로 한 이 희한한 관광 버스에 오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말이다.
거품경제가 끝나면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끝장으로 밀려 난 사람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들의 목숨 값으로 받게 될 보험금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그나마 보탬이 되기를... 그리하여 그들은 이 인생의 막차에 오른 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선택보다 잘한 것이라고 자위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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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메시지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지 않아도, 삶의 욕망을 부추기는 일은 사방에 널려있고, 아무리 사소한 미끼에도 흔들릴 준비가 사람들에겐 늘 되어 있다. 미쯔끼가 제안한 끝말잇기는 다들 귀찮게만 여겼던 초반에 비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의 여행 목적이 연상될 때마다 더욱 적극성을 띄게 되고, 급기야 선택 단어조차 삶을 연명하고 싶은 이유, 그것이 된다. 끝말잇기만큼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놀이, 풀리지 않게 조심조심 이어가야 하는 실뜨기나 천번을 접으면 진짜 학이 된다는 전설을 가진 종이학 접기도 마찬가지. 그 뿐인가? 몰래 숨겨 온 복권이 당첨만 된다면 이 따위 음산한 관광버스, 확 탈출해 버릴 텐데...
그리하여 죽도록 살고 싶은 이 자살 관광객들은 결국 죽음의 끝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어 잘 먹고 잘 살았을까?
아니면, 이유 없이 생겨나는 삶의 욕구는 헛된 욕망으로 치부하고 원래의 계획대로 밀어 붙였을까?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몇 번이나 되감기 해서 보았던 이 영화의 결말은 잔인하지만 진실이다. 마음먹은 데로 되지 않는 이놈의 기구한 운명이란 놈 앞에 인간은 영원히 약자일 수밖에...
* 문득 한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부산 태종대에는 워낙에 투신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바위 입구에 이런 문구를 써 놓았다고 한다. “다시 한번 생각하세요”.
헌데, 어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자살 바위 위에 서 있다 보니 살고 싶은 욕망이 솔솔 밀려 오더란다. 그래서 “그래, 결심했어” 주먹을 불끈 쥐며 돌아서는 순간 다시 생각하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고, 결국 그 문구대로 다시 생각한 끝에 투신했다는 이야기.
물론,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