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호수 위에 떠 있는 절 하나. 흐드러진 노랑 분홍 꽃망울이며 우거진 초록, 붉게 사무치는 단풍과 하얗게 시린 눈발까지 명징한 사계의 색채와 풍광이 머물다 가는 곳. 노승이 지키고 아이가 자라나는 그 곳. 이런 소담하고 수려한 자연의 이미지. 예전 김기덕 영화와는 사뭇 다른, 정갈한 풍경으로 펼쳐지는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사람의 생을 순환하는 사계에 빗댄다.
영화는 총 다섯 개의 계절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각 단락의 초입마다 계절을 알리는 붓글씨가 떠오르고, 문이 열린다. 문을 통해 미끄러져 들어가면 비로소 암자에 당도한다. 그 곳에서 한 남자가 계절과 더불어 업을 지고, 욕망을 알고, 분노를 다스리고, 마음을 얻을 것이다. 속세를 마냥 떠도는 우리네 풍진 삶이 내려앉고 돌아서는, 전환점 같은 지점(혹은, 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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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들고나듯, 여러 지점을 통과하며 남자는 자라고 늙지만 ‘사람’이라는 업은 차마 떨치지 못해 스스로에게 돌을 맨 채 산을 오른다. 아니 혹은, 그 업마저 받아들임으로써 겨울을 보낸다. 각각의 단락은 서로 단절되어 있고 이 남자는 매 단락마다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즉, 계절은 이어져 있거나 끊어지고 이 남자 역시 한 사람이거나 여러 명이다. 결국 그가 살아내는 하나의 이야기가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모든 생을 대변하는 것이다. 굳이 배경과 설정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이 영화는 형식 자체로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
다시 봄이 오고 이제는 지난 세월의 굴곡을 고스란히 보듬은 채 풍경처럼 늙어 가는 남자와 지난 봄의 남자처럼 멋도 모르고 미물에게 잔인한 장난을 치는 아이가 남는다. 지난 봄과 같은 아이다. 아이의 천진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문득 섬뜩하다. 먼 발치서 그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는 남자의 황망한 표정이 아이가 앞으로 지고 갈 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린 여인에게서 스스로의 과거와 마주쳤던 겨울처럼 이 봄에도 그는 아이의 미래에서 자신과 마주친다. 도돌이표처럼 맴돌고 맞물리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인생들. 그러나 결국 온전히 홀로 지고 가야하는 각자의 업. 자신과 마주친다는 의미는 그 업을 고해하는 동시에 인정한다는 것이다.
앞날을 ‘기억’하는 결말이란, 그렇지 않은 결말보다 닫히고 안정적이다. 이런 결말 역시 늘 뜻밖의,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길의 복판에 인물들을 놓아버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한 감독의 전작들에서의 결말과 다르다. ‘쉬어가는’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그 자신의 변처럼, 이번만큼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휴식을 허락하는 것일까.
그들이 숨쉬는 곳, 늘 흘러 다니고 따라서 늘 풍경이 변하지만 종내는 갇히고 고여 있는 산 속 호수 위 암자. 광활하고 촘촘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한낱 점 같은 그 곳을 불상의 어깨 너머로 내려다보는 마지막 멀고 먼 부감 쇼트가 못내 애처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