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날이 시퍼런 작두, 그 위에 올라선 여인. 보는 이를 움찔하게 하는 위태로운 광경 속으로 카메라가 줌인해 들어가면 화면 가득 여인의 얼굴이 차 오른다. 풍상이 많았던 표정. 그녀가, 울고 있다. 화면의 거친 입자 사이로, 뺨에 패인 주름의 골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 줄기.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은 울음을 온 화면으로 울어대며 그렇게, <영매-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가 시작된다.
미처 몰랐었다. 그들이 울고 있었음을, 울 수도 있음을.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 혼이 씌인 사람들,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었던 그들. 그러나 카메라가 눈물의 내밀한 순간을 잡아내는 오프닝, <영매>는 이미 애처로운 사람으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현존이 너무 생생해서 그들에 대한 통속적인 관심사들,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무당들이 정말 귀신과 소통하는지 따위는 이미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이다. 나랏님도, 그 어떤 국가 정책도 돌보아 주지 못했던 민중의 신산한 삶과 온갖 업보를 껴안아 온 그들의 역사적 존재감. 다큐멘터리 <영매>는 혼을 부르고 한을 씻어 내리는 무당들을 비로소 직접 조명한다. 이게 진짜다.
나레이션과 자막은 민속학적 이해를 도우며 상당량의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영화의 호흡을 조절한다. 때론 격앙된 풍진 인간사와 교차되는 객관적인 접근이 이 영화의 휴먼 스토리를 역사적 맥락과 연관시키며 관조적인 시선을 제공해 감상에 몰입하는 것을 막고 순수한 서정성만을 우려낸다.
죽은 자의 한이 산 자의 삶에 관여한다는 무의 세계. 사람들은 굿을 하면서, 영혼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심오한 철학을 덧붙이지 않고도 죽음은 자연스레 삶의 영역에 틈입하여 하나의 문화가 되고, 삶의 태도를 이룬다. 죽음과의 화해는 소박한 위로가 되어 두려움을 달래고, 인생을 깨우친다. 모녀간에 불화가 많았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살아서 화해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제는 단 오 년만이라도 편하게 살다 가시라며 어머니의 늙은 뺨을 어루만지는 박미정씨의 손길처럼 당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과 닿아 있는 것이다.
죽은 자의 설움, 그에 대한 산 자의 애달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상처. 이 모든 것과 화해하려는 처절한 ‘몸말’이 한 바탕 벌어지는 영화 <영매>는 한국인과, 한국적 삶의 태도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기억이자,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