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바보영화―액면 그대로 바보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보고 있는 사람의 기분까지 한없이 바보스럽게 만드는 영화까지 그 의미의 스펙트럼은 넓고 넓다―의 계보 속에서, <내 차 봤냐?>는 단연 귀염둥이로 불릴 만 하다.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일단 단순하다. (이 부분은 <주랜더> 같은 영화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요컨대 패션과 모델에 대한, 혹은 탄광촌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주랜더>라면, <내 차 봤냐?>는 그런 종류의 발판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이 앤 사일런트 밥> 같은 경우엔 <주랜더> 보다 몇 배 더 심한 편.) 그리고 바보스러움이라는 본연의 미덕에(혹은 미덕에‘만’) 충실하며,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정말 충분히 바보스런 기분에 빠진다. 텐트 만한 딸기 무늬 팬티를 입은 거인 미녀 외계인에 헤븐스 게이트를 연상시키는 묘한 종교단체, 타조떼까지 출현하여 아비규환에 가까운 법석을 떨어대지만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다. 아무래도 그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에 쫓기는 두 명의 스투피드한 짝패가 납치되거나 말거나, 타조에게 박치기를 당하거나 말거나 시종일관 히히히히 웃어대는 데서 유래한 바 클 것이다.
피자배달부 제시(애쉬튼 커쳐)와 체스터(숀 윌리엄 스콧)는 머리가 좀 많이 나쁜 짝패. 마음씨는 꽤 후덕해 보이지만, 곰보다 여우가 낫다고 주위에서는 이 커플을 꽤들 미워하는 모양이다. 차 좀 얻어타자고 저들 딴에는 싹싹한 웃음 가득 띄우고 접근해도 문 열어주기는커녕 차로 치고 달아나는 형국이니. 그래도 나름대로 여자친구도 있다. 나란히 이들의 여자친구가 되어준 박애주의자들은 쌍둥이자매 완다(제니퍼 가너)와 윌마.
대략 이와 같은 프로필의 제시군과 체스터 군,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간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 거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1년은 족히 먹고 남을 푸딩이 가득 차 있고, 집 앞에 있어야 할 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차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평화로이 울려 퍼지던 백뮤직마저 슈우우우욱 하고 맥없이 사그라든다). 그래도 스트레스성 위장병 따위와는 천리만리 멀어 보이는 이들 콤비의 반응은 “언젠가 푸딩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술에 쩔어서 사들였다 보다”며 히히덕대는 게 전부. 한편 여자친구들은 바보 남자친구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그리하여 제시와 체스터, 차안에 놓아둔 1주년 기념선물을 안겨주고 여자친구의 화를 풀어준 후 찐한 밤 한 번 보내보겠다는 야무진 소망을 안고 자동차 수색작업에 나선다.
물론 상황이 의도한대로 호락호락 흘러가 줄 리가 없다. 간밤의 자취를 쫓아 ‘키티캣 클럽’으로 발을 들여놓은 제시와 체스터는 자신들이 바로 한나절쯤 전 이 곳에서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쭉빵미녀들과 노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갑자기 나타난 트랜스젠더가 “내 돈 내놓으라”며 이들의 목을 조른다. 돈을 찾아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겨우 풀려 나오자마자 맞닥뜨린 건 기괴한 종교단체. 에어캡-세칭 ‘뽁뽁이’―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얼핏 보기엔 그냥 마마보이로 밖에 안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자를 지도자 ‘졸탄’으로 모시는 이들은 제시와 체스터에게 ‘연속체 통신기’라는 호랑말코 같은 물건의 행방을 추궁한다. 거기에 타이트한 검은 옷을 섹시하게 걸친 왕가슴 미녀단(Hot Chicks)과 ‘유럽 호모’ 2인조까지 달려들었다. 연속체 통신기 내놔, 내놔, 내놓으라니까. 물론 이들의 정체가 외계인이 아니라면 이상하겠지.
타조에게 쫓기고, 애써 찾은 차는 압수 당하고, 등에는 기억도 안 나는 문신(각각 제시와 체스터가 가장 애용하는 말인 ‘임마(Dude)'와 ’짱이야(Sweet)'가 대문짝 만하게 새겨져있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도 바보 콤비는 몇 초 후면 이내 모든 상황을 히히히 웃어넘긴다. 요컨대 인생 자체가 chaos라, 문제가 문제라는 걸 애초에 인식하지 못하는 형국. 일례로 들 수 있는 게 노상 키스 에피소드다. 차를 몰고 도로를 질주하던 제시와 체스터는 갑자기 옆 차선의 장발남녀 커플과 신경전을 벌인다. 커플이 서로 기대고 포옹하자 질 수 없는 바보콤비,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한 후 찐한 키스를 시작한다. 그래봤자 ‘라이벌’에게서 돌아온 것은 찬사 대신 구역질이었지만, 이들은 승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스로는―가 마냥 즐겁다.
사실 <내 차 봤냐?> 같은 영화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는 건 적절한 일이 못된다. 물론 어리석고, 비평적인 면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주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영화지만 산만함 속에서 기분 나쁘지 않은 웃음을 끌어내는 솜씨는 꽤 노련하다. 여자의 가슴에 집착하고, 앞 못보는 소년을 희화화하며, 새로울 거라곤 한 톨도 없는 농담을 지껄여대지만 어쩌랴. 스스로도 이해 불가능일 만큼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아마도 그건 이 바보영화가 관객을 효과적으로 바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빡빡한 머릿속을 무장해제 시키고, 제시와 체스터의 세계와 똑같은 무법천지로 개조해버린 탓이다.
한편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한 편. 현재 명실상부한 최고 청춘스타로 발돋움한 애쉬튼 커쳐가 지금처럼 확 뜨기 전임에도 꽃미남의 기준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아, 뒤통수가 좀 절벽이긴 하더라) 얼굴과 더 나무랄 데 없는 바디를 자랑하며, <아메리칸 파이>로 이름을 알린 숀 윌리엄 스콧은 귀염성 있는 충실한 개그연기를 펼친다. 애쉬튼 커쳐는 이 영화로 LA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좋게 말하면 무구하고 막말하면 어째 좀 맹한 쌍둥이 중 한 명으로 <데어 데블>의 액션 미녀 제니퍼 가너가 출연한다는 것도 특기해둘 만한 부분. 2000년 개봉 당시엔 미국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 흥행 면에서도 선전한 셈이다. 게다가 8,90년대 한창 자주 만들어졌던 힙합 뮤직비디오―과장된 제스추어, 비키니 차림의 쭉빵언니 1개 소대와 어우러지는 놀이 한 마당 기타 등등으로 상징되는―를 패러디했음에 분명한 풀장씬 같은 걸 보면 은근히 머리 깨나 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글쎄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