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영화에 대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토대회 먼저 갖도록 하자.
지금 소개 하고자 하는 영화는 원제가 'The man who cried', 짧은 영어 실력으로 대충 해석해 보자면 '우는 남자' 정도가 될 듯한데.. 이 영화, 3년 만에 겨우 비디오로 출시되며 개명한 것이 '피아노2'다. 박채림이 채림 되고, 허석이 김보성 되듯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만 있다면 이름 바꾸기야 수긍할 일이지만, 어쩌자고 속편 행세란 말인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 영화의 감독이 여성이며 패미니즘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피아노'의 감독 제인 캠피온과 유사하여 그리 되었다고 밖에.. 그렇다면 여성 감독들이여 조심하시라. 뭇 관객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간 당신의 영화가 바로 '피아노3'가 될지도 모를 일이니.. 어찌됐든, 유난히 많은 속편들 덕분에 속 시끄러운 요즘 또 한편의 속편 아닌 속편이 그 대열에 합류하였으니 오호 통제라~~~
어지간히 산만하게 포문을 열었지만, 이 영화를 소개하자면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초장에 한번만 더 흥분하자. 웬만해선 기억해 내는 사람 없고, 좀처럼 정보를 찾아볼 수 없는 잊혀진 이 영화의 캐스팅은 의외로 화들짝 눈이 동그래질만 하다. 먼저, <아담스 패밀리>의 귀여운 딸 크리스티나 리치가 성숙한 자태를 뽐내며 크레딧 맨 윗자리를 빛내고, 다음으로 신비롭지만 어딘가 살짝 퇴폐스런 케이트 블란쳇, 음험한 분위기 가득한 코엔형제의 페르소나 존 터투로, 세상 밖으로 유혹하듯 강한 아웃사이더의 풍취를 전파하는 조니 뎁까지, 안 봤으면 모르되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뚜렷한 개성의 배우들이 별일 아니라는 듯 눙치고 있다. 거기다 감독은 <올란도>, <탱고레슨>의 샐리 포터. 어떤가? 구미가 당기지 않으신가?
한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이 영화는 적대감 섞인 크리스티나 리치의 검은 눈빛과 세련되고 유려한 영상, 장엄한 오페라들로 줄거리의 상당부분을 대신한다. 덕분에 빠르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피곤한 눈과 귀가 나른한 편안함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배우들의 몫도 크다. 자유로운 영혼 크리스티나 리치, 조니 뎁 커플은 시종 눈빛과 몸의 언어로만 대화를 나누고, 현실적이고 속물 근성의 존 터투로, 케이트 블란쳇 커플은 그들의 공허한 관계를 진한 화장과 화려한 장신구 속에 감춘다. 결국 사랑하는 이를 떠나 미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 수지. 하지만 아버지는 미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미 꾸리고 있으며, 병든 몸이 된 상태다. 그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릴 때 아버지가 불러 주었던 노래를 러시아어로 부르는 수지의 얼굴에서 영화는 끝난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피아노2>야 이미 판명된 엉터리 비디오 출시 관계자의 오만이라 치고, <우는 남자>는 뭐란 말인가. 아버지를 찾으려고 러시아에서 영국,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당도한 천신만고를 겪은 것도 어린 소녀 수지요, 유태인이라는 핏줄 덕분에 나치를 피해 사랑하는 이를 떠나야 했던 것도 그녀인데.... 하지만, (우는 남자로 예상되는) 아버지를 보자. 고향에 남겨둔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소문 하나 믿고 소중하게 지켜온 신념도 버리고, 새로운 가족을 꾸렸다 하지만 몸도 피폐해진 상태다. 먼길을 달려온 딸을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다만 딸의 러시아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전부. 수지는 이제 어떤 과정을 겪었든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만, 아버지는 이제서야 회한이 밀려들 것이다. 그러니 울밖에..
찾고 버림의 영화.
내용과 제목이 상생을 이루는, 이 영화의 타고난 이름은 이리도 훌륭한 것이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