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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악동은 어디로 갔을까
스위밍 풀 | 2003년 8월 22일 금요일 | 박우진 이메일

데이빗 호크니의 그림처럼 차분하고 푸른 물, 그 위에 일렁이는 빛, 곁에 누운 그녀의 탄탄한 몸, 그 미끄러질 듯 매끄러운 질감. 눈으로 만질 수도 있을 것처럼 명료한 이 이미지는 그러나, 완벽한 휴양의 풍경이 되기에는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불안하다. 그건 물을 가로지르는 수상한 그림자, 단지 그 검은 얼룩 때문일까.

<스위밍 풀>의 포스터를 훑다 보면 눈에 띄는 이름 하나, 프랑수아 오종. 전작 <8명의 여인들> 국내 개봉이 끝내 좌절되었음에도 한 극장에서 성황리에 특별전이 열렸던, 낯설고도 궁금한 프랑스 감독.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들, 뒤틀린 광기, 기이한 유머, 위험한 발상과 불온한 에너지. 불편하면서도 못내 매혹적인 전복의 경험.

그러나 이 영화는 또 한 번 그런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변태 욕망을 공공장소에서 떳떳이 충족시켜 줄 생각이 없다. 오종 감독의 왁자지껄한 필모그래피 사이에서 <스위밍 풀>은 단연 적막하다. 그런데(혹은, 그래서) 이상하다. 마치 너무 적막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불안한 포스터처럼.

베스트 셀러 추리 소설 작가 사라 모튼은 다음 책의 집필을 위해 출판사 편집장이자 연인인 존의 별장을 찾는다. 평온한 고독에 맘껏 젖어 있던 사라의 앞에 불현듯, 그녀가 나타난다. 존의 딸이라는 줄리. 도발적인 금발 머리에 늘씬한 몸매와 탱글탱글한 젊음을 지닌 그녀. 생의 향락적인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고 있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분방하고 위험한 그녀가.

<시트콤>을 통해 한 가족을 비틀며 아버지의 질서 속에서 드러나는 병적 징후를 노골적이고 악랄하게 고발한 오종 감독은 로맨스나 스릴러 등의 장르를 빌어 그것을 끊임없이 변주해 왔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에 대한 감독의 흥미는 급기야 <8명의 여인들>에서 당대 최고의 프랑스 여배우들을 집단 출연시키기에 이른다. 종종 ‘집’으로 나타나는 아버지의 질서와 ‘여성’은 <스위밍 풀>에서도 주요 소재이자 주제. 남자(존)에게서 멀어져 왔건만 사라는 시시콜콜 그에게 전화를 걸거나 줄리의 엄마에 대해 궁금해하고, 무엇보다 그 별장은 줄리가 강조하듯 ‘아버지의 집’이다. 남성의, 아버지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은 분열되고, 분열된 자아 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치 관객처럼, 줄리와 그녀의 사생활을 찬탄과 시기, 수치스러움이 뒤섞인 눈길로 집요하게 응시하는 사라의 모습은 분열증 그 자체다. 그런 사라를 줄리는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쓰면서 정작 실천은 못 하지 않느냐.”며 조롱한다. 글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통제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 믿음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욕망. 그것은 질서에 편입한 욕망의 근원적인 딜레마이다.

욕망을 언어로써 안전하게 억제하는(작가) 여성과 욕망을 몸으로 표출하는 여성 간의 이분법적 구도, 질서 속의 무의식과 이어지는 집안의 고인 물(수영장), 분열된 자아를 표상하는 거울이나 창에 비친 상 등 영화는 고전적인 은유법을 차용한다. 따라서 복잡한 심경을 담은 배우의 표정이나 물, 거울 등 정적인 이미지들이 주요한 수사가 되며 영화 전체의 리듬을 차분하게 조율한다.

“도대체 당신의 문제가 뭐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창의력이 필요해?” 존의 물음에 사라가 대답한다. “아니, 뭔가 다른 것. 당신은 이해 못 해요.” 이건 마치 섹스와 폭력, 끊임없이 과격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는 대중의 요구와 갈등하는 창작자의 항변이거나, 자신의 전적에 따른 고정적인 스타일을 기대하는 외부 혹은 내부에 거스르고자 하는 오종 감독의 항변처럼 보인다. 혹은 세간의 조심스런 평처럼 이제 ‘주류’ 영화 감독의 위치를 점한 그의 변명일 수도 있으려나. 줄리의 말대로 존의 출판사에서는 출간되지 못할 해피엔딩의 로맨스 소설을 다른 출판사와 계약함으로써 독자 노선을 꾀하는 사라 나름의 해피엔딩은 그러나, 사라진 줄리의 행방(사라는 또 다른 자아를 어떤 식으로 조화시킬 것인가)과 사라와 새로운 출판사간의 계약 관계가 묘연한 까닭에 불투명하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무난한 완성도를 갖추었지만 ‘프랑수아 오종’이라는 이름이 지닌 독특한 힘과 그 자전적 메시지 때문에 선뜻 판단하기 어려워져 버린 <스위밍 풀>은 이런 단정하고 정제된 스타일로의 변화가 그의 분기점이 될지, 휴식이 될지, 혹은 독창적인 악취미의 고갈을 알리는 신호일지 오종 감독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2 )
ejin4rang
재미있어요   
2008-10-16 09:48
mckkw
재밌던데...   
2007-12-0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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