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화를 보러 가는 저의 기분은 전혀 업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반신반의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영화에 대한 입소문은 대체로 시큰둥했습니다.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면 심한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안 볼 수야 있나요.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지요. 오랜 세월 떨어져 살다가 몹쓸 병을 얻었다는 소문과 함께 돌아온 애인을 마중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좀 호들갑스러운 비유이기는 하지만, 저에게 <터미네이터>는 다른 영화와 같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볼품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내놓고 흉을 보지는 않으리라… < T-3 >를 보는 제 마음의 준비 자세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초췌해진 몰골로 돌아왔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너 왜 예전 같지 않냐고 핀잔을 줘서야 인간의 탈을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속으로야 누구보다 착잡하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좀 심한가요? 제가 전편들을 좀 심하게 좋아하는 거라고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다행스러웠다고 말해야 할까요. 영화는 소문대로 앞의 두 편이 올라선 경지에는
< T-3 >는 한 수 접어주고 보더라도 아쉬움이 남는 영화입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이, < T-1 >과 < T-2 >가 워낙 보기 좋게 맞물려 있는지라 비집고 들어갈 빈 틈이 있어야지요. 우선 < T-3 >에는 < T-1 >에 남겨놨다가 < T-2 >에서 멋지게 써먹는 터미네이터의 잔해가 없습니다. < T-2 >에서 다 태워 녹여버렸으니 있을 수가 없지요. 그 한 가지로 저는 많은 언급을 대신할 생각입니다만, 한 가지만 더 꼽자면 < T-3 >에는 아예 터미네이터가 없습니다. 더 강력한 T-X가 등장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무슨 소린고 하니, 터미네이터에 대한 오해와 그로 인한 팽팽한 긴장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터미네이터>는 바람 빠진 풍선이라는 겁니다. 분명히 < T-3 >에서는, < T-1 >에서 카일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때의 답답함이나, < T-2 >에서 사라 코너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나타난 터미네이터를 보고 온몸에 힘이 빠져 쓰러질 때의 안타까움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 그 장면 정말 죽이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말하면, < T-3 >에는 결정적으로 린다 해밀턴이 없습니다. 시고니 위버 없는 <에이리언>을 상상할 수 없듯이, 린다 해밀턴이 나오지 않는 <터미네이터>는 진짜 같지가 않습니다. 그 커다란 공백을 메워야 했을 클레어 데인즈는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요.
< T-3 >에는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전편들과 자꾸 비교하면 뼈도 못 추리구요, 자체적으로도 빈 구석들이 눈에 띕니다.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도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극치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한 듯합니다. <터미네이터>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도망과 추격’인데, 대단한 장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그 다가감과 멀어짐의 리듬이 둔한 편입니다. 수호자 터미네이터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지만 주목에 값할 만하지는 못하고, 새로운 여성 터미네이터는 정말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큽니다. 연기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구요. 명색이 터미네이터인데, 뭔가 질리도록 끈질긴 맛이 있어야지 그렇게 간단히 끝장나서야… 이러다가는 잔소리가 끝이 없겠네요. 끝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끝내기 전에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터미네이터 4>를 기다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처럼, <터미네이터>는 이미 저에게 거역할 수 없는 제 인생의 영화로 자리잡았다는 말씀을… 언젠가 그런 테마로 글을 쓰겠다는 약속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