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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 명랑 음모론
컨페션 | 2003년 7월 21일 월요일 | 박우진 이메일

우선 쟁쟁한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스티븐 소더버그, 조지 클루니, 찰리 카우프만, 샘 록웰, 줄리아 로버츠, 드루 배리모어. 차례로 제작자, 감독, 각본, 주연 배우들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로 감독 데뷔한 조지 클루니가 <존 말코비치 되기>, <휴먼 네이처>, <어댑테이션> 등 기발하고 이상한 시나리오로 주목받아온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연출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컨페션>의 원제는 ‘위험한 마음의 고백: 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 TV방송국 PD인 척 배리스가 1984년에 쓴 동명의 원작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한 때 CIA 비밀요원으로 33명을 암살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물론 ’공인되지 않‘은 고백이기에 몽땅 ’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 고백의 진위여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60년대를 회고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얼핏 다분히 낭만적으로 보인다. 알록달록한 복고풍 의상과 세트, 포근한 음악, 척의 여자친구 페니로 나타나는 자유 분방한 연애 사상. 음험한 시대가 종종 그렇듯, 위험한 사상은 화려하고 순진한 표면 뒤에 숨어 있다. 한 예로, CIA요원이자 연락책인 짐 버드가 척에게 ‘누군가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할 때 그는 달콤한 음악의 볼륨을 끝까지 높인다. 낭만적인 배경음악과 잔인하고 섬뜩한 영상간의 기묘한 불일치, 그 균열은 여러 번 반복된다. 정치적인 음모와 불안을 효과적으로 은폐하고 대중들의 눈과 귀를 막는데 봉사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의 속성을 떠올려 볼 때,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선정적인 오락물을 주로 제작해 온 척 배리스가 사실은 CIA암살 요원이었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시대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타당하다.

척 배리스는 음담패설이 가득한 ‘데이트 쇼’나 ‘신혼부부 게임’, 어리숙한 사람들을 은근히 놀려먹는 ‘공 쇼’ 따위를 제작하며 대중의 시선을 빼앗는다. 물론 TV세트는 ‘환상’적이며 그의 프로그램에 꽂히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다. 화면 속은 밝다. 그러나 TV에서 나오는 빛은 푸르다. TV 앞에 앉은 시청자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푸른빛은 공포영화를 연상시킬 만큼 음산하다. TV의 안과 밖은 그렇게 대비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음산한 캐릭터는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짐 버드이다. 그는 늘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거기에 ‘있다’. 조명의 효과로 기괴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흡사 유령처럼 슬그머니 등장해 있다. 종종 나타나 척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며 살인 기술을 전수하는 그는 어쩌면 국가주의의 망령처럼 보이며 냉전시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의 비인간성을 비꼬는 은유로 기능 한다.

이제는 찰리 카우프만의 특징처럼 보이는, 텍스트를 넘나드는 전개가 <컨페션>에서도 발견된다. 영화의 상당 부분에서 장면의 전환은 단절된 편집이 아닌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카메라가 ‘데이트 쇼’ 출연자들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패닝한 후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패닝하면 출연자가 바뀌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던가, 녹화현장이 곧바로 TV화면이 되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 장면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영리한 장면 전환으로 시공간을 함축할 뿐 아니라 여러 텍스트들이 연결되고 뒤섞여 버린다. 스탭이 무대를 밀고 지나가는 척의 과거 회상처럼 어떤 장면에서는 배경이 드러내놓고 바뀐다. 영화는 일시적으로 연극화된다. 그렇게 스스로의 작위성을 폭로함으로써 이 영화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없는 현실이 아니다. 물론 이것을 브레히트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런 거창한 명목보다는 하나의 유희로써 자체의 허구성을 즐긴다. 페니는 춤을 추며 두 개의 배경, 즉 서로 다른 공간을 넘어 간다. 패트리샤가 척을 살해하는 장면 뒤에는 그것을 역전시키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컨페션>은 영화적 장치들을 갖고 놀며 전체적으로 명랑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인터뷰 장면 등 다큐멘터리적 기법까지 동원하며 리얼리즘에 대한 늘어진 고민 따위는 가뿐히 건너뛰듯 보이는 이런 전개는 그러나 리얼리즘의 근본적인 질문을 나름의 방식으로 몸소 실천한다. ‘무엇이 진짜인가?’에 대한 이 쾌활한 말 걸기는 척 배리스가 겪어온 시대의 이중성이라는 내용과 맞물릴 때 다시 의미심장해진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현실과 허구가 뒤죽박죽된 이 영화에는 그 어떠한 결론도 없다. 그러나 척 배리스의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던 고백을 단지 한 과대망상증 환자의 허풍으로 흘려듣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패트리샤의 입을 통해 폭로되는 음모이론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 의뭉스러운 시대, 냉혹하고 황폐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되는 현실과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조작된 낭만적이고 달콤한 도피처로써의 판타지가 공존하며 따라서 비밀과 서스펜스가 가득한 그런 시대가 분명 있었고 아마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2 )
ejin4rang
스릴러 스릴있다   
2008-10-16 09:54
ldk209
우아한.. 스릴러...   
2007-01-22 10: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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