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는 무엇보다도 ‘분노’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흔한 감정이지요. 살다 보면 화가 안 날 수 없어요. 어쩌면 산다는 게 화나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안 들잖아요. 세상도, 세상 사람들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아니시라면 존경스럽구요. 아니고 싶은데 잘 안 되지 않나요? 특히 참기 어려운 화가 있지요.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멍에 같은 거… 가령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분노는 얼마나 고약합니까. 모든 화가 그렇겠지만, 화를 내고 나서 보통 찝찝한 게 아니고, 어디 마음껏 화낼 수나 있나요. 그래서 참다 보면 병이 되지요. 그러다 한 번 폭발하면 사람이 다치거나 죽기도 합니다. 물론 정당화될 수는 없지요. 분노란 그토록 무서운 감정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화가 나면 어떻게 하시나요? 아니, 어떻게 되십니까?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 심장의 펌프질이 빨라지면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핏발선 눈에다가, 온몸의 힘줄이 불끈불끈… 머리에서 김이 나지는 않습니까? 열을 받으면 모든 물질은 뜨거워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대로 두면 끓어 넘쳐 마침내 뚜껑이 열리는 순간이 옵니다. 제 정신이 아니게 되는 거지요.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 수 없는, 알 바 없는 상태. 스스로를 다스릴 힘을 잃어버린 상태 말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상대가 이해해 줄 리 있나요. 단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경악과 공포 속에 몰아넣거나, 아니면 맞장 뜨겠다는 분노를 하나 더 불러일으킬 따름입니다.
그런데 헐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분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네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녀 없는 야수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녀 앞에만 서면 헐크는 왜 작아지는가… 헐렁헐렁한 헐크 팬티만 걸친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어버립니다. 사랑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상투적인가요? 아무튼,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속을 털어놓게 되는 법이지요. 헐크로 변했다가 돌아온 브루스는 베티에게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합니다. 분노와 힘을 느끼게 하는 꿈… 그 다음이 중요한데요, 그는 그것이 ‘자유’의 꿈이기도 했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I like it.”
얘기가 분노에서 자유로 넘어오게 되니 조심스러워지는군요. 더군다나 그 자유가 바로 분노의 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위험한 자유 아닐까요? 헐크의 아버지를 지배하는 광기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헐크는 분노를 참으려고 애쓰는 데 반해, 아버지는 아들의 분노를 이용하려고 기를 씁니다.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가 되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미치고 환장하는 거지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어?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아버지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오겠습니까.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짜샤! 그런 성질머리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물건이 아니지요. 자유, 그 가공할 에너지의 원천이자 산물인 자유 말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뭐라고 합니까. 야, 도로 가져가. 멈출 수가 없어서 괴로워 죽겠어.
인간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무한한 자유라는 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헐크도 땅을 박차고 솟구치며, 광활한 북미 대륙을 펄쩍펄쩍 뛰어다녔을까요? 그러나 역시 뛰어봤자 벼룩이지요. 벼룩치고는 살벌하게 큰 데다가 점프력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가 스크린의 한 점이 되어 그려내는 커다란 포물선은, 지구의 중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 실존의 고독한 확인일 뿐,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또 전투기에도 매달렸을까요? 이 영화에서 빛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지요. 광대한 우주 공간을 향해 수직으로 비상하는 헐크. 그러나 역시 한계 고도에 다다라 몹시 괴로운 헐크. 자유란 그토록 아찔한 높이에 오른 존재만이 힘들게 견뎌내야 하는 고통과도 같은 것일까요? 당신이 헐크라면, 그런 자유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는 구속 중에서, 어느 쪽을 좋아하시렵니까? 둘 다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진데… 그런데, 자유와 사랑을 동시에 꿈꿀 수는 없을까요? 원래는 둘이 하나가 아니었나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헐크>가 썩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균형을 맞추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이안 감독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것 같아요. 만화 <헐크>와 감독 자신의 <헐크>. 아주 실패는 아니지만 두 마리 다 반씩밖에는 못 잡은 느낌이네요. CG에 공을 들인 흔적은 역력하지만 아무래도 좀 겉도는 느낌을 완전히 가시게 하지는 못한 것처럼, 이안 감독 특유의 인간 탐구도 그리 밀도 있게 수행되지는 못했다는 게 저의 감상입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 열심히 했어야지, 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구요. 애초에 두 가지를 하나로 봤어야지, 라고 말하겠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통해서 다른 하나에 도달하는 길. 혹은 섞어놓는 것과 녹여내는 것의 차이… 어쩌면 그것은 영화의 리듬에 관한 문제인 듯싶기도 합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은 괜찮은데… 일단 영화가 좀 길죠. 제 소설에 대해서도 그런 조언이 있었습니다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뭐 그런 얘깁니다. 실은 그게 뭔지 아는 게 어려운 일이지요. 속편이 만들어질 모양이니, 속단은 금물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누가, 무엇이, 또 ‘두 얼굴의 사나이’를 화나게 할지, 그 찢어지지 않는 바지의 비밀이 다음에는 과연 풀리게 될지, 기다려 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