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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데이즈' 김문생 감독 인터뷰 | 2003년 7월 5일 토요일 | 임지은 이메일


언론 시사 때 김문생 감독은 <원더풀 데이즈>를 비로소 세상에 내놓게 된 감흥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애 하나 낳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산고’만 무려 7년. 마음속에 담아둔 말이 없을 수 없다. 대장정 그후, 아쉬움이나 불안감보다는 후련함이 더 크다는 감독의 입으로 <원더풀 데이즈>를 듣는다.

Q: 우선 무려 7년의 대장정 끝에 작품 내놓은 소감이 궁금하다.
김문생 감독: 마냥 좋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만 하고 있다가 막상 결과물을 공개하고 나니 통쾌하고 후련한 기분.

Q: “비주얼에 비해 이야기는 심심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던데.
김문생 감독: 근본적으로 영화라는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예술과 다른 영화만의 장점은 바로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장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드라마만 전달한다면 문학과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감정을 ‘가져다 쥐어주는 데’ 익숙해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영화가 주는 미장센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사실 스토리가 단순한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미장센과 단순한 개인들을 결합해 감동을 전해준다, 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다. 이미 익숙한 코드만으로 영화를 읽는다면 놓치는 게 너무 많다. 만약 불친절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 더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라는 장르가 사실주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불만스럽다. 편협하지 않은 시각으로 보아준다면 우리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점, <원더풀 데이즈>만의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웃기거나 울려주기를 기대하며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Q: 주인공 수하, 제이, 시몬이 실은 한 인물에서 갈라져 나온 세 가지 다른 면이라는 이야기를 했던데, 만약 그렇다면 좀더 각 인물의 성격을 극단으로 밀고나갈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김문생 감독: 설명 부족과 불친절은 다른 문제다. 말대로 시몬은 현실, 수하는 이상, 그리고 제이는 늘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자아를 상징한다. 그 모두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면들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살아야하고, 미래를 꿈꿨지만 항상 돌아서 보면 현실을 택해왔고, 그러고 나서도 방황할 수밖에 없고... 그런 관계를 설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극단화되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Q: 일례로 이런 점을 들어보겠다. 수하와 시몬은 대립자다. 우선은 어릴 때부터 사랑해온 제이라는 여자를 사이에 둔 라이벌 관계고, 각자가 처한 위치 면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시몬이 에코반이라는 기존의 가치, 이권을 수호하려는 입장이라면 수하는 아웃사이더이고 전복자다. 그런데 둘 사이의 갈등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에 있는지 모호하다. 또 충분한 캐릭터 구축이 없다보니 갈등 자체에도 생생함이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김문생 감독: 우선 <원더풀 데이즈>가 영웅주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부터 이야기해두고 싶다. “혁명가 수하가 인류의 원더풀 데이를 가져왔다” 이런 결론을 전달하고자 한 게 아니라 결국은 우리가 서있는 그 자리가 지옥이며 동시에 천당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수하가 계속해서 꿈꾸는 지브롤타가 결국은 그들이 살고 있던 그 땅이라는 점이 영화에서 밝혀지지 않는가(*영화의 배경이 되는 섬의 지형이 지도에 그려진 지브롤타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영화 말미에 드러난다). 그리고 생사를 걸고 싸워 지키는 터전이라도 하늘에서 보면 한낱 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릉도원이 항상 너무 멀리 있고, 죽어야 천당에 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천국이라면 필요 없을 것 같다. 늘 여기 있어야지. 수평적인 시간과 수직적인 시간을 가로지르는, 매 시가 한 번 밖에 있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먹구름 하나 벗겨지면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다른 세상이 있는데 가지고 있는 걸 지키기 위해 그 안에 늘 갇혀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영화 안에 담고 싶었다. 사실 햇살 하나 내리쬔다고 마르에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하늘 한 번 보고, 자기 자신이 서있는 곳을 돌아보면서 정화될 수 있는 게 우리 사는 모습이다. 영화의 제목인 ‘원더풀 데이’는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Q: 2D(셀 애니메이션)+3D(컴퓨터 그래픽)+미니어처 실사 촬영이 결합된 멀티메이션 방식으로 제작된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가?
김문생 감독: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한 다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미국이나 일본 것과는 달라야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른 점’이 과연 뭘까 골몰해봤는데, 애니메이션을 보면 대부분 드는 느낌이 가볍다는 것이다. 3D건 뭐건 간에 그림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지 무게감이나 공간적인 압도감을 전달하는 일은 드물다. 나는 원래 무대디자인 출신이고 미니어처를 다루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미니어처를 넣으면 내가 원하는 ‘무거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대기가 흘러 다니고 무게감이 생생히 느껴지는 그런 애니메이션이라면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퀄리티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간 서로 다른 매터리얼(material)를 섞어 일체감 있게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쳤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원더풀 데이즈>다.

Q: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다. 특이했던 점은 쭉 일직선으로 달려나간다는 점. <아키라>의 폭주족의 경우 곡선을 따라 돌면서 환난적인 이미지를 배가시킨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보다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정서가 많이 묻어 나오는 듯. 장면의 연출 의도가 궁금하다.
김문생 감독: <원더풀 데이즈>는 길을 무엇보다 중요한 테마로 잡았다. 직선적인 도로 이미지는 사실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를 보고 느꼈던 점들과도 닿아있다. 끊임없이 나오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창녀로 팔려간 마누라를 찾으러 가는... 인간의 삶이라는 건 끊임없이 길을 따라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뭔가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길을 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 그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집단 사이에 길을 놓자고 생각했다. 보수적인, 가진 것으로 지키고자 하는 현실적인 집단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전복적인 집단은 왼쪽에 있고. 그래서 제이가 밖에서 에코반 안으로 들어올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건 안착하는 느낌. 그리고 밖으로 나가야 할 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나가는데, 여기에는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심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원래는 길 씬이 더 많았다. 그런데 캐릭터들의 드라마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들어냈다. 나로선 그게 무척 안타깝고. 길은 굉장히 중요한 테마이면서 세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매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트로부터 길이고, 제이의 변화―에코반과 바깥 세계, 혹은 시몬과 수하 사이의―가 일어나는 부분에서도 어김없이 길을 달리는 모습을 집어넣었다. 아까 <아키라> 얘기했는데, 나도 그런 말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접근 방향에 있어서는 두 영화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느낌을 준다면 역시 오토바이와 길 때문이겠지.

Q: 130억원에 가까운 비용에 제작 기간 7년.. 아득하게 느껴진다(웃음).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혹은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면?
김문생 감독: 사실 난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고, 그래서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비용에 관한 얘기라면, 순제작비 80억, 마케팅비 20억, 영어버전 제작비가 20억, 예비비 6억 해서 126억원으로 책정된 거다. 사실 처음에는 순 제작비를 47억 정도로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작업하다보니 어림도 없었고(웃음), 결국은 자꾸 자꾸 늘어 80억에 이르게 됐다. 물론 감독이나 제작자로서는 그 비용을 충당하는 과정이 힘들었지. 무엇보다 고생스러웠던 건 스탭이다. 빈말이 아니고. 80억이라는 금액을 5년 간 350명으로 나눠보니까 1인당 1500만원이 나오더라. 어디까지나 평균치긴 하지만 1년에 300만원씩 받고 일했다는 얘기다. 어디 인건비가 다인가? 기자재에 또... 게다가 내가 무리하게 일을 돌렸다. 스케줄에 도저히 못맞출 것 같아서. 보통 24시간 촬영해서 나는 시간 내내 버티고 촬영이나 조명 기사들은 2교대로 12시간씩 일했다. 합성 경우에도 오전 오후 2교대 씩 24시간 풀로 갔다. 합성 들어갈 때 분량이 총 1300컷이었는데, 하루에 5컷을 제대로 합성한다는 게 무지 힘든 일이다. 하루에 5컷이면 한 달에 150컷, 1년을 꼬박 해야 할 수 있다는 건데, 또 한 컷에 일주일씩 걸리는 장면들도 있다. 붙들고 있다보면 아주 피가 마르는 거지. 스탭들 정말 고생 많았다.

Q: 해외의 관심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소개하고 나니 대체로 반응들이 어떻던가?
김문생 감독: 당초 생각한 것보다 더 좋아서 기분 좋다. 미국 쪽으로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이 충격이었다고 말들을 하더라. 그리고 프랑스 기자 하나는 인터뷰를 보내왔는데(서면 인터뷰지를 꺼내 보여준다)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작년에 <마리이야기>를 보고 한국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올해 칸에서 <원더풀 데이즈>를 보고는 거의 쇼크를 받았다. 한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는가. 한국이란 나라에 대체 어떤 저력이나 기반이 있길래 갑자기 1, 2년만에 이렇게 두드러지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뭐 난 그냥 적당히 둘러치면서 “니네가 모르는 한국이 있어!”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지만(웃음) 그런 반응들을 상당히 많이 접했다. 그리고 우리 영화를 구입한 프랑스 파테 디스트리뷰션(Pathe Distribution)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20만 불에 샀다. <원더풀 데이즈>? 50만 불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상의 가치로 우리 영화를 바라봐 주더라. 애니메이션의 레볼루션이다, 신기원이다 하는 말들을 하면서. 특히 유럽 쪽에서는 국내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스토리”라는 칭찬들을 하길래 더 흡족했다(웃음).

Q: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던가?
김문생 감독: 미국의 경우,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재미있고 즐거운 무드의 애니메이션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은 세기말적이고 무겁고, 주로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요하는 애니메이션”이 대다수고. 그런데 우리 영화는 미국과도 일본과도 다르고,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 안에서 풀어냈다고 느꼈다고 하더라. “웃음이 말라버린 듯한 세 주인공을 보고 미래가 어쩌면 저렇게까지 무덤덤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시대 탓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게 그 쪽의 변이다. 그런데 수하가 한 번 딱 웃었다는 걸 알아차려 줘서 나로선 그것도 기뻤고. 제이와 해후한 후 “나 옛날 친구 만났어.”라고 씩 웃는 장면 말이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경고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보면 해석이 더 좋은 것 같다(웃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 또한 그런 것이었고, 알아차려 주니 든든하고 뿌듯하더라. 애니메이션에 있어 뭔가 하나 해냈다고 여겨질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긴다.

Q: 그렇다면 국내는 어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주 타깃 층은?
김문생 감독: 뭐, 국내에서도 반응은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주 타깃은 16세에서 18세 정도의 영 어덜트 세대―중고생쯤 되겠지. 그들은 세상을 그렇게 복잡하게 보지 않는다. 보다 단순하게 체화하듯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만이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보면 아쉬운 부분이라도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매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Q: 성격에 관해 질문 하나 더. 예컨대 시몬이 제이에게 실제로는 집착하지만 그걸 내보이지 않는 건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건조해진 사람들의 자화상이라는 얘긴가?
김문생 감독: 아니, 원래가 쿨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실 미국애들이 우리한테 요구한 것 중에는 그런 게 있었다. 성격이 왜 이렇게 쿨하냐고.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핫(hot)해야 한다. 나중에 수하와 제이가 서로 끌어안는 부분에서 그 사람들이 너무나 의아해하며 묻는 거다. “왜 섹스를 안하냐"고(웃음).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서 본다면 동생은 옆에 쓰러져 있지, 앞날을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갈림길에 놓여있지. 그 경우에 섹스를 한다면 더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거다. 그런 게 우리 나름의 리얼리티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좀더 핫(hot)해지고, 감정을 드러내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사실 <원더풀 데이즈> 안에는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사실 한 번도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하는 거야.“ 뭐 이런 따위. 나는 ‘사랑한다’는 표현 자체가 상당히 미국적인, 혹은 영어적인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미장센을 즐기게 하려면 감정이 너무 고조됐다 싶을 때 커트해야 한다는 게 내 믿음이기도 하고. 브레히트가 말한 이화 같은 거다.

Q: 부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부천에서는 극장에서든 곧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확인하게 될 텐데, 어떻게 봐야 좀 더 영화를 즐길 수 있는지 가이드 삼아 소개 한 마디.
김문생 감독: <원더풀 데이즈>를 보는 동안 90분간의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가 여행을 가면, 낯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비친다.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비록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상이더라도 말이다. 선입견 없이 편안히 몸을 내맡기면 굉장히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즐겁게 보기를 바란다.

취재: 서대원, 임지은
촬영: 이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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