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매(손예진)는 태어나자마자 안타깝게도 엄마를 잃는다. 그래서 그녀는 태일(차태현) 엄마의 젖을 먹으며 자라, 그와 뜻하지 않게 젖동기가 된다. 이 때부터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일매가 태일의 첫사랑으로 지목당하면서 가파르게 치닫는다. 가히,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녀석의 첫사랑 사수 행각은, 당연 평탄할 리 없다. 일매의 아버지이자 태일의 고등학교 선생인 영달(유동근)이 태클을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태일의 무지막지한 무뇌아적 행동방식이 마음에 들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영달은 주문한다. 성적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끌어 올려라!, 일류 대학에 들어가라! 사법고시에 합격하라! 혈기방장한 녀석은 올리고, 들어가고, 합격한다. 이제 일매와 결혼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일매는 “저 결혼시켜 주세요, 하지만 태일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에요”라며 청천벽력과 같은 뜬금없는 폭탄선언을 한다.
특히, 일매가 bomb 선언을 한 후 냉전관계에 있던 태일과 영달이 긴장완화를 넘어 화해 무드를 타며 동반자적 파트너쉽을 발휘, 결혼까지 골인하고자 무릇 의사 부자관계로까지 나아가는 후반부에서 위 같은 손예진 캐릭터 사수 작전은 완벽하게 통제되며 펼쳐진다. 언뜻 보면, 1급 시크리트의 007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한 없이 알쏭달쏭할 수도 있을 것이요 또는 무시무시한 반전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때만 되면 웽웽~~~~~거리며 15일 날 시작되는 민방위 날 대피훈련처럼 닳고 닳은 그것에 다름 아니구나, 하며 단박에 눈치 챌 것이다. 고로, 영화가 손예진 캐릭터를 사수하기 위해 매끄러운 진행을 일정부분 훼손하면서도 고군분투하며 투입한 석연치 않은 신파멜로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적 사례로 남을 만하다. 마치, 쓰레기차 피해 돈 주우려다 똥차에 치이는 꼴처럼.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이처럼 다채로운 분투기를 관객들에게 재미나게 던져주고자 낯익은 비책을 준비한다. 첫째는 차태현이라는 흥행수표와 흥행수표가 공수표 되지 않게끔 뒷바라지해주는 손예진, 그리고 <가문의 영광>으로 또 다른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유동근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안착시킨 성공적 캐스팅이다. 둘째는 이러한 스타 캐릭터에 힘을 실어 적극 활용하고자 이제는 영화적 언어의 하나로 자리 잡은 ‘사투리’를 극대화시켜 인물에 덧 씌어 놓았다는 것이고. 셋째는 전언했듯 손예진 캐릭터를 절대적이고 슬기롭게 써먹고자 신파멜로를 영화 안에 위치시킨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손예진은 사투리를 구사 안 하고, 시종 일관 사근사근한 서울말로 상대편을 향해 대사를 쳐댄다.
<해피투게더>, <피아노> 등 안방프로의 최고 연출가로 소문난 오종록 감독은 이 흥행 포인트를 코미디스럽게 때로는 만화스럽게 또 때로는 멜로스럽게 영화 안에서 줄기차게 엮어낸다. 하지만 짬뽕과 짱개의 기초재료인 밀가루가 아무리 비싸고 곱다한들 그것을 이리저리 쳐대며 진정한 면발로 뽑아내는 주방장의 능수능란한 그것이 없다면 면발의 생명력은 철가방 안에서 다할 뿐이다. 먹는 이의 식탁에 올라온 순간 떡이 된 면발을 보고 좋아할 청요리 애호가들 없다는 것이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그럴싸한 흥행코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이톤 사투리의 드센 남발, 유기적이지 못한 코믹과 신파멜로의 버무림, 오바스런 상황 설정 등으로 인해 조화로운 코드의 울림이 아닌 불협화음의 소음으로 궐기대회를 마감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