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의 신작 영화 소식이 들리면 참으로 반갑다. 세월이 하 수상해도 끄떡 않는 친구를 대하는 믿음으로....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기까지는 많이 망설이게 된다. 이래도 움직이지 않을거냐는 질책이 또한 두렵기에.... 수입업자들이 나와 같은 망설임을 가졌을리는 만무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 <빵과 장미>는 제작 된 지 2년 만에 수입되었고,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빵 과장님>이 아닌 <빵과 장미>를 찾고 있다는 말을 당췌 못 알아듣는 몇몇 비디오 가게를 순회하며, ‘이 정도는 소장해 줘야 가게의 면이 설 터인데..’ 우물우물 말 흘리기를 여러 번 해야 했던 상황에 비하면 말이다.
각설하고....
이제 지구상에 유일하다고 봐도 좋을 좌파 감독 켄 로치. 음지라면 어디에든 미치는 그의 시선이 스페인 내전(랜드 앤 프리덤)과 니카라과 내전(칼라송)을 거쳐 이번에는 ‘천사’들의 도시, LA의 빌딩 숲 사이로 꽂힌다.
하지만, 이런 분통 터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펼쳐 보이면서도 켄 로치의 시선은 놀라우리만치 여유롭다.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불법 이민자들의 현실을 직설적인 가사(사장과 싸우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에 담아 담담하게 노래로 들려주거나, 시위 도중 경찰서에 연행되어 가서도 남미의 혁명 영웅들의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말하며 낄낄거리는 모습을 담는 등, 기존 그의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유머러스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노동운동가 샘과 마야의 로맨스가 더해지면서 <빵과 장미>는 도식적이거나 딱딱한 선동적 영화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획득한다. 이것은 한결 같은 의지와 사상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에게서나 볼 수 있는 나름의 터득 결과이거나 여유로움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칼라송>부터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 취재한 결과로 얻어낸 생생한 생활상과 인간적인 유머, 그리고 로맨스를 조화롭게 그려낸 시나리오 작가 폴 래버티에게도 어느 정도는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도 과장된 절망이나 허무맹랑한 희망 대신 평범한 사실 하나를 제시한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회사측에서 받아들이는 감격스런 장면에서, 정작 주동자인 마야는 절도죄로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현실은 딱 여기까지인 것이다. 하지만, 차에 실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엔 어느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으며, 배신자라고 욕 했던, 하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언니 로사와도 화해하고, 조합원들은 그런 로사를 감싸 안아줄 넉넉한 마음을 내 보인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인 것이다.
* 아메리칸 드림의 피해자로 종종 비쳐졌던 우리들의 모습이 언젠가부터 코리안 드림이라는 미명하에 점점 일그러지고 있는 듯 하다. 전국 각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하듯, 기껏해야 가족 상봉의 시간을 마련해 주기보다 제도적으로 빵과 장미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아프게 느껴본다.
“행복 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 지셨습니까? 이제 주위를 둘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