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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부스에 갇힌 그 사내의 기막힌 사연
폰부스 | 2003년 6월 9일 월요일 | 박우진 이메일

떠도는 풍문에 의해 어느 정도 감 잡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폰부스>는 다소 엉뚱한 오프닝을 펼쳐 보인다. 별과 인공 위성 사이를 통과하며 우주를 유영하는 카메라. 어라, <폰부스>가 SF물이었나 내지는 내가 극장을 잘못 들어왔나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동안 카메라는 지구를 향해 내달린다. 미국으로, 뉴욕으로,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드디어 한 남자를 포착한다.

이 이상한 오프닝을 통해 영화는 카메라가 일종의 전지적 시점을 취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것은 영화가 일차적으로 전달하는 도덕적 메시지와도 상통하는 시점이다. ‘진실하게 살지어다’ 쯤으로 거칠게 요약되는 내러티브의 결말은 이런 시점으로 말미암아 더욱 강력해진다. 본래 도덕이란 인간의 얄팍한 속셈을 초월하는 전지적 가치가 아니던가. 스튜를 공중전화 부스에 꼼짝없이 묶어 두는 정체불명의 범인 역시 그러한 논지를 뒷받침한다. 범인은 스튜에 대해 사사로운 점까지 알고 있고, 그를 조종하며, 그의 과오를 탓하고, 끝까지 잡히지 않는다. 스튜가 듣는, 얼굴 없는 목소리는 마치 화면과 분리된 나레이션처럼 들린다. 그래서 범인의 존재는 모호해지고 어쩌면 신, 어쩌면 스튜의 내면으로 여겨진다.

도시는 익명성의 공간이다. 거리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아니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은 자신을 숨기기 쉽고 혹은 고립된다. 스튜가 갇히게 되는 공중전화 부스는 그런 의미에서 도시적 익명성의 특징을 집약한 배경이다. 투명한 유리 속, 시각적으로는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지만 청각적으로는 분리된다. 그건 겉으로는 늘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듯 하지만 사실 늘 외롭다는 도시인들의 내면과도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곳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익명성에 최대한 기대기 위해 통화 기록이 남지 않는 공중 전화를 찾았건만 스튜는 도리어 그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는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처럼 전시된다. 그에게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턱이 없는 공중전화 부스 바깥의 사람들은 스튜에게 화를 내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도시의 익명성이 폭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폭력은 미디어를 통해 극대화된다. 온갖 방송 카메라가 스튜에게 집중될 때 셀 수 없이 많은 익명의 사람들은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가 의도하지 않은 면모만 섭취한다. 그리고 곧 섣불리 그를 판단할 것이다. 스튜의 직업이 미디어 에이전트라는 점에서도 영화는 미디어와 관련을 맺는다. 늘 거짓 이간질 따위로 미디어에 개입해 온 그를 미디어의 대상으로 세움으로써 미디어의 피상적이고 진실하지 못한 속성과 기능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카메라라고 늘 진실을 담보하는 매체는 아니다. 그러니까 스튜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그의 말을 놓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진실을 포착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공중 전화 부스라는 공간을 하나의 픽셀로 본다면, 이 영화는 디지털 시대의 소통과 연결된다. 픽셀을 기본으로 하는 디지털 매체를 통과하면 세계는 작은 단위로 나누어져 조합된다. 영화는 스크린을 분할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 기법에 의해 전화를 든 사람들은 작은 네모 즉 각각의 픽셀에 갇힌다. 스튜가 아내 혹은 정부에게 전화를 걸 때 그녀들도 프레임을 두른 채 스튜와 한 영상에 공존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피상적인 소통에 불과하다. 스튜의 예쁜 여자 친구가 단지 출세를 위해 그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스튜만 모른다. 모두가 스튜를 둘러싸고 주목하고 의심하던 단절된 순간을 구원하는 것은 너무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아내의 믿음이다. 그건 아날로그적이고 원초적인 소통 방식의 기초다.

그래서 <폰부스>는 디지털화된 도시, 즉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속사정에 개탄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전지적 시점에서 퍽 비장하고 근엄하게 펼치고 있는 도덕적인 영화다. 이처럼 바른(?) 생활을 촉구하는 영화가 테러의 영향으로 개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트맨과 로빈>의 조엘 슈마허 감독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한정된 공간에서의 긴박한 순간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다. 공중 전화 부스를 둘러싼 다각도의 카메라 앵글은 스튜의 답답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가두고, 화면 분할 기법은 교차 편집을 대신하며 동시적인 여러 상황을 빠르게 전개한다. 영화를 장악하는 콜린 파렐의 호연 역시 주목할 만 하다.

1 )
ejin4rang
공중전화신이 너무 많다   
2008-10-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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