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일본 드라마 한편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이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하여 성공한다는 내용의 드라마였는데,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주인공이 항상 한 친구를 부를 때 '하치'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엄연히 이름이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등장 인물 중 하나가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묻자, 주인공의 또 다른 친구가 이렇게 대답해준다. "충견 하치공, 알지? 저 애가 꼭 그랬지. 저 친구 뒤를 항상 졸졸 따라다녔거든."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지만, 일본 사람이라면 충견 하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아키다견답게 영리하게 생긴 눈과 쫑긋 세운 귀, 듬직한 덩치에 믿음직한 모습, 그리고 영리함을 고루 갖추었던 하치. 주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주인을 마중하러 역으로 나갔다는 그 충견은 오늘날 시부야 역에 동상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행복하기만 하던 나날들. 하지만 1925년 5월 21일, 하치가 이상하리만치 짖어대고 까마귀 울음 소리가 BG음악인 양 계속 울려 퍼지던 바로 그 날, 우에노 교수는 갑작스레 사망하고, 하치는 그 때부터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우에노 교수의 부인은 집을 팔고 하치를 아사쿠사의 친척에게 맡긴다. 하지만 다시 시부야의 교수가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하치. 결국 이웃에 사는 키쿠 아저씨가 하치를 돌보아주기로 하지만 어이없게도 하치를 맡게 된 바로 그 날에 키쿠 아저씨도 급사한다. 완전히 혼자 남겨진 하치. 하지만 시부야 역에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는데…
죽은 주인을 10년이나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러닝타임 100분의 영화를 만들어내기에는 어쩌면 너무 단순하다. 감동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예상된 전개며, 반복되는 화면 구성으로 인해 감동의 폭이 한정되는 느낌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작년에 개봉했지만 이미 1987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촌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1920년대의 시부야 역 하나를 새로 만드는데만 해도 1억 2000만엔이나 들었다니, 생각보다는 제법 정성이 들어간 영화인 듯 하다. 게다가 말 못하는 동물이 주는 감동이란 역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21세기의 이웃 나라의 사람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게 한다. 특히 먼발치에 숨어서 교수의 부인을 보는 하치의 눈빛은 사람이 강아지 탈을 쓰고 연기하나 싶을 정도다. 하치의 눈빛과 주인에 대한 한없는 기다림은, 때로는 동물이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진부한 새삼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