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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꼼짝 마. ‘튜브’가 간다!
‘튜브’ 언론 시사회 | 2003년 5월 22일 목요일 | 임지은 이메일

tube [tub|tjub] n. 1 (금속유리고무 등의) 관(管), 통(筒) 2 (치약이나 채료가 든) 튜브, 짜내어 쓰게 된 용기 3 터널, 지하철(英). 세 번째 정의에 굵게 동그라미를 쳐두자. 앞으로 우리는 ‘튜브’란 단어를 들을 때 치약이나 타이어, 혹은 어린 시절 수영장 갈 때 꼭 챙겼던 ‘쥬브’ 대신 제일 먼저 지하철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영화 <튜브>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

한국 최초의 지하철 재난 영화 <튜브>가 어제(5월 21일) 언론 시사를 가졌다. 프리프로덕션 기간 5년, 총 2500컷, 실제 지하철 7호선과 같은 부품을 사용해 만든 지하철 세트만 8억으로 여러 면에서 ‘화끈하다’는 수사가 어울리는 작품. 특히 <튜브>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누구나 예상하듯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때문이다. 지하철 참사로 <튜브>는 3월 예정되어있었던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온 국민의 뇌리에 생생한 이 사건이 <튜브>의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 이 날은 영화와 함께 약 15분 길이의 메이킹 필름이 상영되었다.

<쉬리> 조감독이었던 백운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튜브>는 지하철을 탈취해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리스트(박상민)와 목숨을 걸고 이를 저지하려는 형사(김석훈)의 대결이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형사 옆에는 그를 간절히 바라보는 여자(배두나)가 있다.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준 박상민은 힘은 좀 너무 들어갔으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의 한 전형을 창조한 듯. 이전의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에서 탈피해 고독하고 터프한 형사를 연기한 김석훈은 얼핏보면 지금보다 좀더 젊은 양조위 같다. 한편 경쾌, 발랄의 대명사 같은 배두나는 눈물을 자아내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감독의 변대로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실은 지하철. 달리는 지하철만큼이나 숨 고를 틈 없이 흘러가는 영화에 한번 시선을 빼앗기고 나면 스크린에서 눈 돌리기 힘들어진다. 어쨌든 이 날의 시사회에는 감독과 박상민, 김석훈 두 주연배우, 그리고 기주봉을 비롯한 조연배우들이 자리했다. 히로인 배두나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고, 알고 보면 진짜 주인공 지하철도 여러 상황 상 (당연히) 참석할 수 없었다. 칸 필름 마켓에서 <튜브>가 일본 메이저 영화사 ‘쇼치쿠’에 200만 불이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되었다는 낭보 덕인지 제작진과 배우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해 보인다.

Q: 결과물을 보고 난 소감이 궁금하다
백운학 감독: 그저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엔 쑥스럽고... 맘껏 즐겨주신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물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지만 다른 부분에 낭비되지 않고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진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김석훈: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완성되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다. 영화를 그리 많이 찍어보지는 못했지만, 촬영 못지 않게 프리 프로덕션도 정말 힘든 과정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배운 게 많은 작품이기도 하고. 감독님 말대로 재미있게 보아주시면 그걸로 만족한다.
박상민: 공백기가 길었다. 임권택 감독님의 <장군의 아들>로 화려하게 데뷔했었지만, 그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공백기 동안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백운학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도 그랬다. “그 동안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 뽑을 때만 기다리고 있다.” 다음 날 감독님으로부터 “그 칼을 내가 뽑겠다”는 답이 돌아왔고, 그래서 이렇게 함께 영화를 찍게 되었다. 촬영기간 내내 내 에너지, 연기에 대한 열정, 모든 것들을 원 없이 퍼부었다. (“처음으로 악역 맡은 소감은?”이라는 질문에) 대단히 만족한다. “잘해야지”라기 보다는 “잘 해내야만 한다”는 각오로 한 컷 한 컷 최선을 다했다.

Q: 기시감이라고 할까? 보는 동안 많은 영화들이 스쳐가더라.
백운학 감독: 사실 제작 준비기간부터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를 봤고, 공부해가면서 따라하려 했다는 점 부인하기 힘들다. 오히려 그 장점들을 온전히 우리 스크린으로 불러들이는 게 숙제라고 생각했으니까. 장르영화의 컨벤션도 많이 따랐다. 그런 점들을 숨길 생각은 없다. 워낙 돈이 많이 들었다보니, 게다가 제작사분들이 거의 한 번도 요구를 거절한 일이 없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셔서 마음의 부담이 너무 컸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아야 하는데 하면서. 그런데 마켓에서 좋은 가격에 판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한 시름 놓은 기분이기도 하다.

Q: 김석훈에게 묻는다. 나이를 먹고 나니 좀 달라진 부분이 있는가? 연기에 임하는 자세라던지, 본인의 입지라던지.
김석훈: 난 아직 영화계에서 단단히 입지를 굳힌 배우가 못된다. 탐색하듯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다. 이번 <튜브> 같은 경우는 액션이었고, 다음에는 블랙코미디나 정통 멜로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한다(웃음).

Q: 역시 김석훈에게 질문. 그 동안은 주로 부드럽고 젠틀한 남자를 연기했는데, 이번 역할은 말수도 적고 터프한 형사다. 실제 성격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김석훈: 어, 어느 쪽도 아닌데. 나는 게으르고 먹는 걸 좋아하고 건들대는 인간이다. (그럼 연기하는 데는 어느 쪽이 쉬웠나? 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모범적인 이미지보다는 강한 캐릭터가 더 나았지 않은가 싶은데.

Q: 박상민에게 질문. 공백기 동안 어떻게 지냈나?
박상민: 사실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 가지 잡음들이 많았다. 그런데 <튜브>를 만난 순간에 더 이상 자존심 같은 거 부려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잡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나만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Q: 만약 감독이 <튜브 2>를 찍자고 한다면?
백운학 감독: 다 안 한다 그러지.
박상민: 어우우...
김석훈: 아니, 정말로 후반부에서 박상민씨 캐릭터 보면 좀 모호하잖아. 충분히 그러자고 할 수 있지(살짝 불안해하는 목소리).
박상민: 뭐, 다시 하게 된다면 한번 더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김석훈: 난 싫다. 너무 힘들어서 어휴. 앞으로도 육체적으로 고달픈 영화는 <튜브>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Q: 무술 연습은 많이 했는가?
김석훈: 박상민 형과 함께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배웠다. 감독님은 폼나는, 테크니컬한 액션을 원했지만 사실 지하철이란 공간에서는 그게 어렵다. 그러다 보니 때깔나는 액션보다는 뛰고 처박히고 기고.. 그런 게 태반이다.
박상민: 정두홍 감독과는 <장군의 아들>때부터 함께 했었고, 그러다 보니 호흡도 좋다. 사실 더 많은 액션씬이 있는데 편집되어 아쉽다. 힘들었던 부분은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예전 같지 않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는 거. 운동을 좀더 열심히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Q: 감독에게 질문. 왜 이런 소재를 택했는가? 특별히 자신이 있었나?
백운학 감독: 자신감 같은 거 없었다. 그냥 센 영화 한 번 해보자, 고 제작자와 논의하던 중에 “어 <스피드> 같은 거 하나 해보면 어떨까?”, “버스는 나왔으니까 지하철로.” 그러다가 <튜브>를 구상하게 된 거다. 뭐 액션영화란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시작 자체가 뭐를 해야만 한다, 뭘 해보고 싶다 이게 아니라 그 자체가 컨셉이자 기획영화인 셈(웃음). 지금은 찍어놓은 거 보고 나니까, 다른 거야 어쨌든 속도감이나 전철이라는 공간 특유의 맛은 의도했던 대로 잘 살아서 다행스럽다. 이거 잘못 찍으면 <우뢰매> 된다니까. 시나리오 본 사람들이 사실 “이거 어떻게 찍으려고 해?” 이런 걱정들을 많이 했었고, 그럴 땐 “몰라요” 등등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내 마음이다. 믿음, 마음 하나로 덤벼라, 하면서 찍었다. (특히 강추할 만한 장면은? 이라는 질문에) 쑥스럽지만 2300커트 전부 다. 왜냐면 그냥 편하게 찍은 커트가 없기 때문에.

Q: 아쉬운 점과 추천할 만한 점.
김석훈: 사실은 주인공이 우리가 아니라 지하철이다. 주인공은 지하철, 그리고 그 안에 막으려는 사람과 달리게 하려는 사람이 존재한다. 정말 스피디한 영화고, 그렇다 보니 호흡도 짧고 압축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기 면에서는 그게 좀 아쉬웠다. 그리고 추천할 만한 점이라면, 선명해서 우선 좋았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딱 떨어지고, 시나리오의 느낌이 영화에 그대로 살아나 있다.
박상민: 내가 연기한 캐릭터에 애정이 참 컸다. 물론 감독님의 애정이 그보다 덜할 리야 없겠지만, 촬영한 부분이 많이 잘려나가 강기택의 캐릭터와 고뇌 같은 것들이 다 살지 못해 아쉽다. 참 최고의 장면으로는 도입부의 공항씬을 꼽고 싶다. 관객의 기선을 제압할만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인사 한 마디.
백운학 감독: <튜브>는 재미있는 영화다. 다소 말이 안되거나 엉터리 같은 부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본격 오락영화. 할 줄 아는 거라곤 이 짓 뿐이니 앞으로도 계속 오락 영화를 만들 것이다. 다음 번엔 더 제대로. 같.이(배우들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웃음).

관객의 박동수를 높이는 스피디한 액션 체험 <튜브>는 6월 5일 개봉한다.

취재: 임지은
촬영: 이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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