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출몰할 때마다 도쿄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괴수 가메라. 하지만 그 가공할 위력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미치지 않고 있다. <가메라>는 1956년 도호 영화사에서 제작된 이래 괴수 영화의 한 축을 이뤄 왔으며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 괴수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가메라>는 탄생 30주년을 맞이하여 가네코 슈스케 감독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고 제작 8년 만에 국내 개봉되었지만 센트럴6시네마 단 한 극장에서 이틀 동안 조조 1회씩 상영된 뒤 곧장 비디오 출시되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빌려 영화를 보던 나는 곧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는데, 자막이 없는 더빙판이었기 때문이다. <가메라>는 아동 영화인가? 괴수 영화가 진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국내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메라>는 연소자 관람가 등급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코 아동 영화는 아니다.
영화 줄거리는 아동 영화(?) 답게 별로 복잡하지 않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각성한 가메라와 갸오스가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것이다. 악한 괴수 갸오스는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가메라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에 이 정체불명의 괴수들을 제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간들이 등장하는데, 물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갸오스는 단일 염색체를 가진 특이한 생물로 성체의 날개 길이가 100M에 이르는 조류형 괴수인데 인간을 먹이로 삼으며 초음파 광선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이에 맞서는 가메라는 거북 모양의 괴수로 비행 가능한데다 불덩어리로 적을 공격한다. 가메라는 아무래도 갸오스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영화는 가메라와 갸오스 모두를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고대 문명의 산물로 묘사한다. 또한 가메라는 선한 괴수로 묘사되는데, 인간을 위해 부상도 감수하며 인간 소녀 아사기와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응한다. 역설적인 것은 서로 다른 이유로 격돌하는 두 괴수 모두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부서진 도쿄 타워에 갸오스가 둥지를 틀고 갸오스를 퇴치하기 위해 가메라가 나타나는데, 지축이 흔들리는 게 거의 지진이나 다름없다. 가메라가 갸오스를 잡기 위해 발사한 화염 덩어리는 건물들을 산산조각 내고 불태운다. 물론 갸오스는 사람을 잡아먹는 종이니 인간에게 끼치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이유에서든 이렇게 거대한 괴수들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며 도시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알아두면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 가메라와 감응하는 소녀 아사기로 등장하는 배우 후지타니 아야코는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의 딸이다. <가메라 2>와 <가메라 3 : 사신 이리스의 각성>에도 등장하는데, 3편에서는 1편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한가지. 꼭 더빙을 해야만 했나? 오히려 더빙 때문에 영화를 이해하는게 더 힘들 정도였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시리즈를 계속 낼 생각이라면 더빙은 자제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