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다.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사회나 문화에서도 이런 말은 흔히 적용된다. 가령 대중 음악에서도 크게 히트한 곡을 누군가 리메이크했을 때 리메이크된 곡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 일은 흔하지 않다. 대개 사람들은 '아… 그 옛날 노래가 더 좋다구.'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영화도 그렇다. 지금껏 많은 영화들이 새로운 감독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모습을 바꾼 다음 재탄생 되어왔다. 물론 좋은 평가를 받는 리메이크작도 많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촌스러움이 풀풀 날리는 과거의 작품들에 심한 '땡김' 현상을 겪는다.
하지만 1996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3년에 만들어진 <로미오와 줄리엣>과 그다지 큰 선후배(?)간의 비교 구도가 그려지지 않았었다. 아예 비교자체가 안 되는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겉을 완전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떡볶이 맛은 여전히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을 쓰고 있는 환상의 맛이지만, 33년간 쓴 테이블이며 의자는 몽땅 다 버리고 종업원도 조용한 아줌마에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젊은 아가씨로 바꾼 음식점과 같다고나 할까?
리메이크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한 편의 긴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감각적인 영상과 끊이지 않는 현란한 배경 음악에서 비롯된 의견들인데 이런 감각은 감독 바즈 루어만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의 이전 작품인 <댄싱 히어로>나 이후의 작품인 <물랑루즈>는 모두 그의 MTV 적 감각의 연장선상에 놓여져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하는 속도감, 영화 내내 귀를 자극하는 음악들. 영화를 가볍게 만들고 있다는 시선도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재미면에서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바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꿔준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배우다. 지금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기는 무시 못할 수준이지만,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는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그의 눈빛에 여러 여인들이 쓰러지던 때였다. 게다가 그는 연기를 잘하기까지 한다. 1963년 작에서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가 로미오보다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로미오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옮기는데 더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껍데기만 바꿔도 되겠습니까?'라고 따지듯 묻는 자동차 광고가 있다. 그렇게 따지듯 묻고 있는 말에는 결국 '그러면 안됩니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좀 다른 것 같다. '껍데기'라는 표현의 범위를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 범위가 작품의 재해석을 제외한, 배우나 카메라의 기법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라고 봤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 껍데기만 바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