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에 내리는 눈]은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작 [샤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음악과 편집, 촬영, 그리고 배우들의 차분한 연기까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점도 있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견디기엔 중심줄거리가 지나치게 평이하다는 점.
"어린시절부터 사랑했던 두남녀(유키 구토, 에단 호크)는 인종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하고, 여자와 결혼한 남자(릭 윤)가 살인용의자로 몰리자 그를 구할 단서를 가진 주인공이 갈등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좀 지나치게 익숙하지 않은가? 법정드라마라는 형식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흔히들 채택하는 방식이 법정드라마였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법정드라마들을 보아 왔던가. ([뮤직박스], [어 퓨 굿 맨]에서 [타임 투 킬], [레인메이커]까지... 셀 수도 없다).
그러므로 평이한 방식을 택했다면 영화는 상당히 지루해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독은 뛰어난 연출로 이러한 맹점을 멋지게 극복해내고 있다. 특히 화려한 촬영과 기교적 편집은 그중 일등공신이다. 제대로 된 전투씬 하나 나오지 않으면서 전쟁의 긴장감을 표현해낸 촬영이나 눈 내린 삼나무 숲을 잡아낸 화면의 아름다움은 가히 명 장면이며, 근래의 영화 중 플래시백을 이만큼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도 드물 것이다. 게다가 균형잡힌 시각으로 양쪽의 입장을 고루 설득력있게 보여주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려는 감독의 정성은 지극해서, [데드맨 워킹]을 연상시킬 정도다. 스콧 힉스의 전작인 [샤인]과 견주어 볼 때, 음악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크게 눈에 뜨이지 않지만, 관객이 영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라가도록 차분하게 그러나 충분히 돕고 있다.
진지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편집과 음악에 감탄하면서 감독의 균형 있는 시각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릭 윤을 기대하는 관객도 크게 실망은 않을 것 같다. 대사는 별로 없지만 상당히 비중있는 조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