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머리가 유난히 예민한 소년 <조지 워싱턴>과 함께 광주를 다녀갔던 젊은 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올 더 리얼 걸즈>가 올해에는 전주를 찾았다. 그의 카메라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섬세하고 나른하다. 연기를 뿜어 올리는 삭막한 공장의 모습이나 황량한 폐허조차도 아련한 하늘빛과 어우러지면 마치 꿈같은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엔 청년들이 문제다. 허우대가 멀쩡하고 턱 밑이 꺼끌꺼끌한 동네 청년들. 하지만 연령대가 높아졌다고 해서 그들이 <조지 워싱턴>의 소년들보다 더 단호하고 쿨하냐 하면 절대 아니다. 어울려 다니며 시덥잖은 농담이나 계집질로 창창한 시절을 낭비하는 요 망나니 녀석들은 겉은 어른이나 속은 여전히 여리고 갈팡질팡한 아이들에 불과한 것. 전작에서부터 그린 감독의 캐릭터들은 모두 한 맥락에 있다. 어딘가 한 구석은 허전하고 삐딱하고 엉성한 사람들, 그래서 우리와 너무 닮은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들. 그리고 <올 더 리얼 걸즈>의 특별함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번엔 정말 전과는 다른 진실한 사랑’에 빠진 폴과 노엘 역시 마찬가지다. 전망 좋은 언덕까지 기껏 폴을 끌고 올라가서는 ‘나는 가끔 10초가 지나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해’라며 하나, 둘 손가락을 꼽기 시작하는 노엘이나, 볼링장에서 공을 굴리다 말고 레인 위에 서서 노엘을 돌려세우며 ‘돌아보지마, 춤을 출 거야. 난 밤새도록 이라도 이렇게 춤을 출 수 있어’라며 뻣뻣한 동작을 선보이는 폴이나 여타 러브 스토리의 전형적인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러나 판을 삐죽삐죽 벗어나는 이 이상한 커플과 어설픈 연애담에는 정말 징글징글한 청춘의 미열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젊은 혈기로 무장한 듯 거침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책하는 소심한 연인들. 그 말은, 그 행동은 마음과는 달랐는데 어떻게 진심을 표현할 지 몰라 오히려 버럭버럭 화를 내고 마는 이 어른아이들을 통해 영화는, 서툴고 달뜬 그래서 더욱 슬프고 찬란한 젊은 시절을 펼쳐 보인다.
결정적으로, <올 더 리얼 걸즈>는 따뜻하다. 어디 하나 꽉 찬 데가 없는 요 엉터리 같은 사람들을 보듬는 속 깊은 시선이 있다. 실수를 저지른 누구나 변명할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카메라에 고해성사를 하며 상처를 툭툭 털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되찾는다. 한 때 친구였던 폴을 실컷 두드려 팬 후 ‘넌 이제 내 친구도 아니야, 열 손가락에도 안 들어’ 휙 돌아섰던 노엘의 오빠는 느지막이 다시 폴을 만나 ‘내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아’라며 훌쩍훌쩍 울고 만다. 폴은 그런 노엘을 꼭 안아 준다.
그리하여 이 센티멘탈한 영화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일상의 사소함을 이토록 특별하게 포착하는, 내 안의 서툰 젊음을 이토록 솔직하게 뱉은 영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이토록 ‘아름답고 엉망진창인’ 영화는 너무나 가슴 출렁이는 경험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