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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소년은 울지 않는다
올드 스쿨 | 2003년 4월 24일 목요일 | 임지은 이메일

언젠가 기사에 한 번 썼던 말이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장난감’이 한 개쯤은 필요하다. 바보 같은 연애질, 술, 담배, 쉴 새 없이 눌러대는 리모콘, 껄렁껄렁한 친구들, 그리고 때로는 자학적인 섹스. 젊음은 고단하며, 삶에 대한 총체적인 짜증과 울분은 때로 미친 짓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말이지 더 이상한 것은, 그 어리석고 대책 없던 젊음이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의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인 거다.

무엇을 해도 더 이상 예전만큼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해본 적이 있는가? 여러 번 들은 노래의 가사와 곡조를 얼른 기억해내지 못하고, 방금 본 영화 속 등장인물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는 순간은? 십대와 이십대 초반 무렵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의 그 전율과도 같은 감동의 순간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씁쓸한 납득은? 뽀사지도록 놀아보기로 작정했다가도 내일 아침 출근 시간을 떠올리며 쉴새없이 시계를 보다 결국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쳇바퀴, 그 허탈함은? 이런 일련의 감정들 중 하나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올드 스쿨>을 볼 자격은 충분하다. 아아, 어느새 나는 혹은 우리는, 이토록 낡아버린 거다.

신세한탄처럼 서두를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올드 스쿨>을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 찬 질척한 영화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히 오해다. 아니 영화는 칙칙하게 낡아가는 삼십대의 늙은 소년(!)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와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의도한다.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이런 배나온 아저씨가 되어있었지만 까짓 거, 다시 그 때처럼 놀아 제끼면 되는 거야. 그리하여 그들이 고안해 낸 것은 광란의 파티와 유치한 미친 짓, 온 집안을 꽝꽝 울리는 음악이 공존하는 ‘남성클럽’.

성적으로 약간, 아니 좀 많이 분방한 여자친구(줄리엣 루이스)에게 걷어차인 미치(루크 윌슨), 결혼 1주일만에 이혼당한 술고래 프랭크(윌 퍼렐), 제법 호방한 척 하지만 실은 육아와 가사, 직장생활에 지친 비니(빈스 본)은 삼십대 초반의 친구들. 세 친구는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대학 캠퍼스 내 미치의 집에 남성클럽을 오픈한다. 그리고 랩퍼 스눕 독(실제로 스눕 독이 출연한다)까지 초청해 뼈가 녹고 살이 타도록 놀아제끼는 주책맞은 세 친구의 파티는 근방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몰려드는 남정네들과 어느새 ‘대부’로 추앙 받게 된 미치.

그러나 대학 학장―그의 정체는 학창시절 세 친구로부터 놀림을 당하던 너드(nerd)소년. 따라서 이 처우는 과거에 대한 복수임에 분명하다―이 이들에게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서 클럽은 위기에 빠진다. 어느새 삶의 보람이 된 클럽을 사수하기 위해 멤버들은 학장과 무모한 내기에 돌입하는데, 이들 앞에는 절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미션 세 가지가 도사리고 있다.

<로드 트립>의 토드 필립스가 메가폰을 잡은 <올드 스쿨>이, 참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총체적으로 어이없는’ 영화라는 점은 줄거리만 보더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다음으로 남은 질문은 “그렇다면 이 좌충우돌 우왕좌왕 야단법석 굿판이 과연 재미있냐”는 것인데,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하나하나 점수를 매겨볼 것까지도 없이 관객은 어느 틈엔가 스크린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의 안전벨트에 대해 불평 좀 했다고 “닥쳐! 호모냐?”는 윽박지름이 돌아오지를 않나, 아흔 살이 넘은 노인장을 러브젤 가득 찬 풀에서 두 명의 쭉쭉빵빵한 아가씨와 레슬링을 하게 하다 저 세상으로 보내질 않나. “아무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라고 항변하고 싶은 순간이 셀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던지는 지능 낮아 보이는 농담지거리들은 꽤나 웃기다. 웃긴 일단 웃겠지만.. 이상스런 죄책감. 아무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고민해보건대, 아무래도 그 역설은 털끝만큼의 대책도 없이 순간을 내달리는 영화 나름의 솔직함에서 유래하는 듯 하다. 거기 더해 적역캐스팅의 세 배우와, 우리 마음속에 한 가지씩 도사리고 있는 어리석고 즐거운 젊은 날의 기억들. 여전히 영화는 어이없고, 가끔은 화가 날 지경이지만 적어도 프랭크가 수영장에 빠져 허우적댈 때 흘러나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를 들으며 웃음을 흘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도무지 <올드 스쿨>은 그런 식이다. 결혼식에서 "Total Eclipse of the Heart"를 열창하거나―새신랑 새신부 앞에서 뭐가 ‘마음의 개기일식’이냐―, 장례식장에서 진지하게 한 곡조 뽑는 노래는 다름 아닌 “Dust in the Wind." 인생은 한갓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같다고? 모르긴 해도 이런 일이 실생활에서 일어난다면 유가족들 눈에서는 아마 불꽃이 튈 거다.

그리고 미국 아닌 대한민국의, 남성 아닌 여성으로서(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경우지만) 제멋대로 내달리는 ‘그 놈팽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배알 꼴리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냥 가서 뒤통수를 한 대씩 쥐어박아 주고 싶.... 흠흠. 이야기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렸지만, 비록 허허실실 코미디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은 참아내지 못하는 당신, 일련의 ‘너저분함’을 싫어하는 엄격하고 깔끔한 관객들에게라면 <올드 스쿨>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어느 쪽 줄에 서더라도 이 영화가 '꽤 웃기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힘들 것.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삶이란 늘 팍팍하고, 또 산다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니까’―정도의 그렇고 그런 답변으로 얼버무려두기로 할까?

1 )
ejin4rang
올드스쿨...재미있네요   
2008-10-16 14: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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