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짖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앞을 향해 나아가고 차가운 아스팔트가 보이고 거기에 한 사람이 발가벗고서 고통받는 장면이 시작된다. 그 뒤로 La Hollandaius라는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이 어둑한 주방을 통하는 문을 지나면 중세의 연회장을 연상하게 하는 식당이 나온다. 주방에는 고음의 성가가 소년의 입을 통해서 흐르고 식당에는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화장실, 이곳은 침묵이 지배한다. 이것을 한번 보여주려는 카메라의 패닝, 마치 세트 전체가 노출되었다는 인상을 주려는 듯 하다. 그리고 각 공간에는 각각의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이 무대는 시종일관 노출되어 있다. 주방에서는 소년의 노래가, 식당에서는 독재자의 폭력적인 언행이, 화장실에서는 욕망의 배설이 이루어진다.
이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감독이 의도적으로 등장인물들을 서술해 놓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사는 도둑이 운영하는 식당의 주방장으로 포악하고 성적 결핍이 있는 도둑에 대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도 또한 정이 많은 인물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요리사라는 배역이 가지는 설정은 도둑이나 그의 아내, 그리고 정부와는 서로 다르다. 이들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요리사에 대해서는 왠지 정상적인 것 같은 느낌을 그의 흰 옷에서 받을 수 있다.
요리사의 요리는 도둑의 입맛을 고르며, 도둑이 독단으로 음식의 메뉴를 처리하는 경우가 없도록 주방에서 칼을 간다. 도둑은 독재자이다. 그에게서 독재자의 모습은 주방에서 일하는 아이의 가늘고 고운 노래소리로 더욱 부각된다. 노래는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의 한 소절을 연상하게 하며 예수상의 머리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종마루가 있는 지붕 아래로 깊은 숨소리릐 파이프 오르간이 울릴 때 그 소년의 노래는 도둑을 향해서 울린다. "신이여! 회개하게 하소서!" 독재자는 그 소년을 폭력으로 다룬다. 그래서 감독은 폭력속에서 더 강하게 부각되는 소년을 그리고자 한다. 도둑의 아내, 독재자의 아내는 상상가능한 만큼 아름답다. 그녀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며, 무식과 식욕과 더러운 권력욕 앞에서 벗어나려고는 하지만 음식이 주는 쾌락을 부정하고자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독재자의 식당에 말숙한 양복입은 신사가 나타나는 데 둘은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욕망을 확인한다. 욕망의 배설구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이 욕망의 확인자가 되어서 아내 앞에, 그리고 그녀의 정부 앞에 아주 우연적인 것처럼 나타난다. 인과과계에 의해 지배되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아내가 정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우연인 것처럼 과장되지만 필연적인 관계를 영화에서 내포함을 보여준다. 정부는 지식인이다. 그는 텍스트 해체를 직업으로 하는 지식인이다. 감독은 다른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이를 등장시킨다. 그의 공간은 고서가 많은 도서관으로 화면속에 나타난다.
이 영화가 가지는 시공간의 배치는 의도적인 것이 너무 짙어서 영화를 지루하게 한다. 흔히 이 영화를 음식과 권력과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을 밀도 있게 이야기 한다라고 평한다. 이들의 배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독이 배려해 놓은 세트를 살펴야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은 낮이 아니라 밤이고 열흘정도의 시간에 사건전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공간은 식당과 주방, 화장실, 도서관이다. 공간마다 각각의 색깔을 부여하였으며 더불어 각 공간의 지배자도 다르다. 그들의 권력관계는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지배자에게는 황금과 명예를, 요리사에게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식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각종 도구와 재료를 다루는 예술가로 그려진다. 요리사가 지배하는 주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피억압자로 그려지고, 그에게는 독재자 아내의 부정을 감추어야 할 대상이지 드러낼 무엇도 아닌 것이다. 정부와 독재자 아내의 욕망이 확인되는 곳인 화장실은 깨끗한 공간이다.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해주는 성당의 고해성사실의 공간처럼 경건한 분위기이며 모든 배설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장소인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화장실의 지배자는 특정인물이 아니며 단지 그곳은 소비욕망과 관계에 대한 열정으로 상징된다. 그러므로 어떤 무형의 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차가움을 흰빛깔로 표현한다. 새벽에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밝은 패스트푸드점이 현재 자본주의 소비의 욕망을 상징하듯 화장실도 눈 부시도록 밝다. 도서관은 또 어떠한가? 감독은 "지식은 곧 권력을 향한 의지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 권력은 곧 도둑(독재자)에 의해 해체되어진다.
사건들은 밤에 진행되는 데 전체 영화의 시간흐름은 카톨릭에서 따르는 종교적인 의식을 상징하는 듯 하다.
화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화요일...요일별로 전개되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을 기준으로 한다. 감독은 그들의 권력에 신성 함을 더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인 냉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썩어가는 음식들은 마치 권력의 경건함을 겨냥한 듯이 중요한 사건의 계기가 있을 때마다 등장한다. 독재자에 의해서 죽어가던 권력의 본질들은 다시 부활하게 되며 주검을 요리한 요리사와 복수를 원하는 아내가 선두에, 그리고 억압받았던 하찮은 자들이 총을 겨누고서 주검을 먹고 있는 독재자 앞에 부활한다. 독재자의 죽음으로 지루한 영화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음식남녀]가 음식을 통해 가족의 애정을 그린 영화라면 이 영화는 음식을 통해서 권력과 쾌락, 그리고 그들의 전복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언급되고 있는 권력들은 유기적으로 앍혀있으며, 프랑스 혁명시기에 시민, 왕, 귀족 둥의 계급사이에 미묘한 권력관계가 형성되었듯이 식당이라는 공간속에 지배자와 피지배자,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 만들어진다. 결국 주변인들이 만들어진다.
결국 주변인들에 의한 중심의 전복! 프랑스 혁명이 담고 있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종교, 문화, 기호, 지식, 욕망앞에서 일어나는 군력관계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들의 전복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영화이다.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음을 말하기 위하여 영화는 난해하고 지루하지만 일관되게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함수의 구분을 위해서 색채와 조명과 음악을 배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