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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 걸머지고 험한 산길을 헤치는 우리네 인생이여
동승 | 2003년 4월 7일 월요일 | 박우진 이메일

산자락을 등에 두른 고적한 산사. 지는 해 따라 잠들고 새 소리에 깨어나는 이 곳에 바람결 같은 웃음을 지닌 애기스님이 한 분 계신다. 큰스님 말씀에 얌전히 고개 숙이고 부처님 안전에서 합장하며 그럴 듯하게 목탁도 두드리는 의젓한 스님이지만 물긷는 고사리 손이 안쓰럽고 산길을 걷는 종종걸음이 애처로운 어린 아이. <동승>은 그 애기스님의 자그마한 등과, 그 등에 걸린 슬픈 생의 업까지 토닥토닥 쓸어주는 영화다.

어른들은 유년을 오로지 ‘순진 무구’했던 시절로만 추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이유도 없이 나만 보면 괴롭히는 그 놈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는지 너는 아직 어려서 안 된다는 불합리한 금기 조항은 왜 그리도 많았는지 어른들이 하기 싫은 일은 부당하게도 죄다 나한테 시켰지만 혼날까봐 반항 한 번 못 해본,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린 탓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여 나 빨리 어른 될래~ 안 외쳐본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보시라. 마냥 평화롭게 지낼 것 같은 <동승>의 애기 스님, 도념도 마찬가지로 사는 게 힘들다. 매일 물 뜨고 밥 짓고 청소하는 건 그렇다 치고, 또래의 동네 아이들이랑 어울리고 싶은데 사사건건 훼방만 놓는 큰스님이 못마땅하고 나만 보면 못 싸워서 안달인 한 녀석은 눈엣가시다. 다른 애들은 다 있는 엄마가 나에게만 없어서 억울한데, 동네 아저씨는 네가 이만큼 더 자라면 오실게다 맨날 거짓말만 하신다.

<동승>은 유년을 미화하지 않고 담담히 비춘다. 성장통을 겪으며 유년을 통과하는 애기 스님은 스님이라기보다는 아이다. 눈이 맑지만 그 마음에는 ‘바위가 들어앉은’ 우리의 어린 시절이다. 그저 왜 난 다른 아이들처럼 살 수 없을까 눈앞의 고민이 너무 커서 부처님의 넓은 가슴을 보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경을 가르치는 불교 영화가 아니다. 스님의 고뇌에서 너무나도 약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의 성장 영화다. 애기스님이 간절히 그리워하는 엄마는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근원적인 삶의 목적이며, 그것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종교 교리를 연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완전한 것이 아니라 팍팍한 현실을 헤쳐나가고 삶과 부대끼며 체득하는 구체적이고 흠집이 많고 아픈 경험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산사를 뜬다. 정심은 불사른 손가락을 동여매고, 도념은 작은 바랑을 걸머지고 길을 나선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힘겹게 헤치는 애기스님의 뒷모습에 자꾸만 내 모습이 겹쳐진다.

아주 심각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감독은 포스터만큼이나 밝고 따뜻한 시선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솜씨가 간결하고 재치 있다. 큰스님이 툭툭 던지는 선문답마저도 편하고 재미있게 끼워 넣는다. 인물들은 다들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것들은 비극인 동시에 희극이다. 삶이란 그렇게 비극과 희극이 얽힌, 복잡하면서도 소박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독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한 판 잔치를 벌인 뒤에도 모두에게 잔치 음식이 나누어진 것은 아니다. 돈 되는 코미디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집 팔고 아는 사람에게 손 내밀어 가며 정말 어렵게 영화 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있다. <동승>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나리오 작업만 3년. 게다가 4년 동안 이어진 촬영기간 때문에 애기스님이 처음보다 훌쩍 커버린 것이 너무 눈에 띄지만 전국을 누비며 정성껏 담은 사계절 산사 풍경만큼은 참 곱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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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in4rang
그럭저럭 볼만했다   
2008-10-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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