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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의 형장안에서 사형당한 사형제도
데이비드 게일 | 2003년 3월 19일 수요일 | 서대원 이메일

경고- 읽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가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 있는 글이니 아니다 싶으면 바로 빠구하시길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데이비드 게일>은 스릴러 영화다. 사형제도를 논하기 위해 스릴러라는 틀을 빌려왔다고 할지언정 또는 형식이 내용을 때로는 지배한다고 주장할지라도 엎어치나 메어치나 보는 이들에겐 결국 영화는 스릴러이다. 사형제 존폐의 문제는 그러고 나서의 문제다.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은 잘 팔리는 저서는 물론이고, 강단에서도 그 어렵다는 욕망이론의 철학가 자크 라캉의 어록을 인용하며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끔 유도하는 유능한 철학교수다. 동시에 그는, 사형제도 폐지운동단체 데스 워치에 가담하고 있는 열혈 운동가이기도 하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게일은 데스 워치의 둘도 없는 절친한 동료 콘스탄스(로라 리니)을 강간 살해한 혐의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 받고 운명의 칼날 위에 서게 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날이 채 5일도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에서 게일은 자신이 지명한 저널리스트 빗시(케이트 윈슬렛)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무죄를 절박한 표정이 아닌 담담함의 자세로 호소가 아닌 권유로서 표현한다. 빗시는 서서히 게일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포박당하며 그의 무죄를 확신하기에 이른다. 죽은 그녀의 몸 안에서 그의 정액이 검출됐음에도,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가 렉터 박사에게 관장당하 듯, 말이다.

알란 파커 감독은 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언제나 무관심한 사형제도를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반대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웅변한다. 물론,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영화로 다루었던 그의 전작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버디>, <더 월>을 생각해보자면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스릴러라는 측면 역시 미키 루크와 로버트 드니로가 호연했던 <엔젤 하트>가 그의 필모그라피로 안착돼 있기에 특별하게 생소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영화의 대중적인 재미를 따져본다면 <데이비드 게일>은 충분히 즐길 만하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보다 정치적인 색의 명암이 모호하기도 하거니와 <엔젤 하트>처럼 잔혹하면서도 난해한 퍼즐을 도용하는 대신 좀더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달리 말하면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껴 맞추지 않아도 될 만큼의 스릴러 장치만 주 뼈대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알란 파커, 케빈 스페이시,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세 명의 인물 면면만으로 입장료의 반대급부 역할은 충분히 한다. 다만,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윈스렛의 캐릭터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잖이 있었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 공백을 콘스탄스 역의 로라 리니가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침으로써 땜빵을 해준다.

그러나 기이하리만치 <데이비드 게일>에서 의문이 가는 점은 사형폐지론자들을 재현하는 방식에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정말이지 영화를 본 실제 사형제 반대 운동가들로부터 <데이비드 게일>이 좋은 말을 이끌어낼지는 몹시 회의적이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이 제도로부터 가장 큰 피해자인 흑인들이나 빈곤한 자들을 주인공 또는 조연으로 등장시키지 않고, 경제적 가치로 환원시킬 수 있는 변수들을 많이 소유한 중산층 이상의 교수인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점도 그러하다.

결국, 영화의 이러한 설정들은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고스란히 스릴러라는 장르 안으로 포섭되며 복무된다. 특히, 반전이 준비돼 있는 종국으로 치달을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거세진다. 그러기에 보는 이들로서는 감독이 건네는 내밀하고 둔중한 사형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에나 그물망처럼 존재하는 제도는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이성적으로 완벽하고 더 완벽해지려는 강인함에서 생겨난 규율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추레하고 미약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잘 알기에 그걸 감추고 보충하고자 서로들 약속하고 근근이 운용해가는 체계일 뿐이다. 하지만 편하고자 만든 그러한 제도가 현대 사회에서는 역으로 대중들을 옥죄는 하나의 억압도구로서 쓰이고 있다. 사형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오갈 데 없는 대중은 위 같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대피해 자신만의 재미와 위안을 찾아 철저히 즐기며 개인화돼가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영화를 보는 행위이다. 대중은 그래서 골치 아픈 이야기나 거대한 소재를 끌어들인 작품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 관람한다.

이 같은 일반인들의 습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제작자나 감독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를 만들 때 의도적으로 상업적인 측면의 재미도 같이 운용하게 된다. 하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 행동과 다를 바 없기에 보편적으로 좋은 결과로서 마무리되지는 못한다.

<데이비드 게일>도 바로 이러한 범주 안에 놓인 영화다. 감독인 알란 파커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심은 온전하게 부각이 안 되고, 그 속내를 유연하게 내보이고자 차용한 스릴러의 긴장감이 더 크게 작용한, 절반의 성과만을 이룬 경우라는 말이다.

1 )
ejin4rang
살인 무섭다   
2008-10-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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