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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달처럼 멀어지네
문라이트 마일 | 2003년 3월 19일 수요일 | 임지은 이메일

줄리안 반즈의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등장한다. “연인이란 한 영혼에 두 개의 몸을 가진 샴 쌍둥이와 같다.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시체를 끌고 다녀야 한다.” 연인의 죽음이 그렇다면, 가족의 죽음이란 부재하는 한 사람의 공간을 집안에 평생토록 만들어두고 그 빈자리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왈칵 쏟아야 하는 의무, 그런 종류의 아픔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 <문라이트 마일>이 다루고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종생토록 시체를 끌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다. 견딜 수 없어서 지워버리려다가는, 그 잔영마저 사라지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사랑하는 이의 기억 안에서 살기로 마음먹는 사람들.

스크린이 세 사람의 모습을 비춘다. 중년의 남자, 중년의 여자, 그리고 젊은 청년 하나. 얼핏 지극히 범상하고 평화로운 가족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들이 함께 다다르는 곳은 의외롭게도 장례식장. 그리고 곧 묘하게 얽힌 그들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약혼녀 다이애너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되자 조(제이크 길랜할)는 그녀의 부모인 벤(더스틴 호프만)과 조조(수잔 서랜든)의 집에 함께 살게 된다.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업에 매달리는 약혼녀의 아버지와 조문객들의 형식적인 인사에 분노를 터뜨리며 딸에 대한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

무덤 속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집안의 공기 속에서 조는 고통스럽다. 친구처럼 가족처럼 익숙했던 오랜 연인의 죽음 외에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그를 숨막히게 한다. 그가 홀로 간직하고 있던 비밀은 다이애너가 죽기 전 이미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것. 그러나 조는 ‘남겨진 사람들’의 숨막히도록 공고한 유대 앞에서 그 말을 쉽게 그녀의 부모에게 꺼내놓지 못한다. 발송할 수 없게 된 청첩장을 되찾기 위해 우체국에 간 조는 우체국 직원 버티(엘렌 폼페오)를 만난다. 버티는 베트남에서 행방불명 된 연인을 3년 째 기다리며, 그가 운영하는 바에서 일하고 있다. 조와 버티는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리지만, 외로운 두 사람이 부둥켜안기까지는 너무 많은 마음의 장애들이 도사리고 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속에는 온통 그 시대의 잔향이 흘러 넘친다. 버티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행방불명이 된 연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고즈넉한 영화 구석구석을 채우는 것은 엘튼 존, 밥 딜런, 롤링 스톤즈, 데이비드 보위, 제퍼슨 에어플레인을 비롯한 당대의 음악들이다. <문라이트 마일>은 롤링 스톤즈의 동명의 곡에서 제목을 따온 것. 눈에 보이지만 닿을 수 없고, 가까이 가면 멀어지는 마음에 대한 은유다. 감독 브래드 실버링(<꼬마유령 캐스퍼>, <시티 오브 엔젤>)은 영화의 조 네스트처럼 실제로 약혼녀를 잃은 경험이 있으며 그 때의 슬픔을 진정성 있게 화면에 담아냈다.

다소 기복 없이 흘러가는 영화에 방점을 찍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듯 배우들의 연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며 실제로 서랜든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었다는 후일담이 무색하지 않게, 수잔 서랜든은 딸을 잃은 황망함에 흐느끼는, 그럼에도 마치 음악 같은 느낌의 조조를 잘 살려냈다. 한편 극중 벤으로 분한 더스틴 호프만의 모습에서 폴커 슐렌도르프 연출로 1985년 발표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그가 연기한 윌리 로먼을 겹쳐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딸을 잃은-<세일즈맨...>에서는 평생토록 충성한 회사에서 퇴직당한- 비통함, 가식적으로 비칠 만큼 강박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애처로움. <문라이트 마일>을 잔잔함과 격렬함이 공존하는 드라마로 꾸려낸 데에는 더스틴 호프만의 공이 크다. 뿐만 아니라 <도니 다코>에서 번뜩이는 연기력을 과시한 바 있는 신예 제이크 길랜할은 젊은이다운 순수한 솔직함에 흔치 않은 균형감각을 능숙하게 버무려내 보여준다.

조조는 온 집안에 종이를 펼쳐놓고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을 적어내리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진짜 그 애가 어땠는지 생각이 안 나. ‘천사 같은 애였는데..’ 라는 말만 자꾸 떠오르는 거야.” 그런 맥락에서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좋은 애였는데.”로 으레 이어지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조문에 그녀가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다들 알고 있지. 하지만 난 모르겠어.” 조조는 끝내 눈물을 터뜨린다.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 그 애는, 내 딸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모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러나 설령 아무도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오더라도, 사랑했던 사람들이 간직하고 되새기는 한 그는 언제까지나 살아있다. <문라이트 마일>이 힘주어 이야기하듯,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만드는 것은, 기억이다.

1 )
ejin4rang
잔잔한 영화   
2008-10-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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