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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 더 패밀리
나의 그리스식 웨딩 | 2003년 3월 13일 목요일 | 박우진 이메일

딸자식 가진 아버지 마음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똑같은 모양이다. 행여나 세상 풍파에 마음 다칠라 노심초사 고이고이 길러 놓은 딸이 어느 날 웬 놈팽이 손을 붙들고 와 ‘이 이랑 살래요’ 하는 소리에 억장이 무너지는 그 심정 말이다. 그럴 때는 게 아무리 괜찮은 청년이라도 우리 공주에게는 영 가당찮아 보이기 마련이다. 둘이 꼭 붙어 앉아 연신 은밀한 눈빛을 교환하며 방글방글 웃는 꼴이라도 목격하게 되면 속이 벌컥 뒤집어진다. 저런 시원찮은 도둑놈 사기꾼에게 홀딱 넘어가 그 쪽 편만 들고 앉아 있는 딸내미,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하여 미래의 장인 어른, 사윗감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땅땅땅.

툴라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툴라가 까만 뿔테 안경에 부스스 머리를 하고 레스토랑을 휘적휘적 돌아다닐 때는 ‘너 결혼 안 하니’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정작 그녀가 배필감을 데려 오자 오만상을 찌푸린 채 사사건건 트집잡기에 바쁘다. 핑계는 상대가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사실 깊은 속마음은 ‘내 딸을 훔쳐 가겠다고, 쉽게는 안 될걸 요 녀석아’라는 심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한편 툴라의 그이, 이안도 속사정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결혼이란 당사자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부모님께는 최후 통보만 하면 만사형통으로 알았던 미국 청년, 그리스 처녀 집안에 허락 받으러 갔더니 아버지는 얼굴 시뻘개져 반대하고 사돈의 팔촌 생판 낯선 사람까지 자기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벤 스틸러가 이 영화를 본다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미트 더 페어런츠’만 하면 됐지만, 이안은 지금 ‘미트 더 패밀리’할 지경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뿌리깊은 그리스 가문 딸과의 결혼이란 확실히 만만치가 않다. 천상 미국인인 자신에게 그리스인이 되라는 둥 채식 주의자인 그에게 그리스 식으로 요리한 고기를 먹으라는 둥 이런 저런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안이 툴라의 집안과 부딪히며 겪는 ‘문화 충격’이 적당한 템포로 발랄하고 재치 있게 그려진다.

로맨틱 코미디가 특히 남녀 주인공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이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니아 바달로스와 존 코베트는 사실 그렇게 출중한 외모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범하고 편안한 외모는 오히려 친근한 공감을 일으켜 이 영화에 빛을 더한다. ‘못난이 석고상’같던 툴라가 자신감을 갖고 삶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는 마음으로 지지를 보내고 싶을 정도. 툴라 역을 맡은 니아 바달로스가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직접 각본을 썼다고.

생동감 넘치는 주변 캐릭터들이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속마음을 좀처럼 숨기지 못하고 자신을 이 집안의 가장이라고 믿는 순진하고 단순한 아버지, 남편의 위엄을 지켜주는 척 은근히 조종하는 ‘작전’의 달인 어머니, 수다쟁이이지만 진심은 따뜻한 고모, 말이 거칠지만 가끔 결정적 한 방으로 감동의 펀치를 날리는 남동생 등 우리 가족에도 꼭 한 명쯤은 있을 듯한 생생한 인물들이 왁자지껄 어울려 맛있는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분모인, 툴라에 대한 애정이 영화를 한결 푸근하게 만든다.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였다면 남이 아니라 가족이라며 서로 시시콜콜 간섭하느라 바쁜 툴라네 가족에게 명절이면 큰집에 모두 모여 복작거리는 우리네 가족을 겹쳐 보면 더욱 즐겁다. 화끈한 ‘원샷’ 문화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민족과 전통에 대한 자존심이 세고, 대가족 제도를 바탕으로 정을 나누어 왔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와 그리스 문화는 묘하게 맞물린다.

그렇게 고생을 시켰으니 툴라네 가족에게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이안은 ‘그리스식’ 요구를 모두 순순히 받아들인다. 물론 그건 일차적으로 사랑의 힘이겠지만, 어쩌면 영화가 해체된 가족, 원자화된 개인을 우려하며 끈끈한 인간애로 뭉친 공동체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닐까. 딸자식을 그리스 학교로 보내는 이안의 모습, 모든 언어의 근본이 그리스어라는 영화의 풀이를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1 )
ejin4rang
웨딩 떨린다.   
2008-10-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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