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공대 졸업을 앞둔 명민한 청년 제임스 클레이튼(콜린 파렐). 촉망받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의 미래를 보장받은 그에게 어느 날 한 사내가 다가와 모험을 권한다. 사내가 꺼낸 비장의 카드는 바로 제임스의 아버지.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CIA 요원인 탓에 사인조차 비밀에 부쳐졌던 그의 아버지를 사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의 정체는 CIA의 첩보요원 선발관이며 베테랑 훈련교관인 월터 버크(알 파치노). 제임스는 자신 앞에 펼쳐진 탄탄대로를 뒤로 한 채 조국에 목숨을 바쳤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험난한 CIA 첩보요원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선발관에게 발탁되었다고 해서 바로 첩보요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식으로 CIA에 발을 딛기 위해서는 사육장에서의 가혹한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리크루트>의 전반부는 사육장이라 불리우는 훈련소에서의 훈련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CIA 현직 대변인의 자문을 거쳐 그 곳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후보생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받고 언제나 카메라를 통해 감시당한다. 훈련에서 살아 남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삭막한 광경,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은 그 존속을 위해 도리어 인간성을 파괴한다. 사회라는 대의명분은 부품이 된 인간성의 희생을 대가로 유지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버지’상은 매우 흥미롭다. 국가 조직의 보안을 위해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제임스의 아버지.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그는 ‘아버지의 법’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다른 아버지로 대체된다. 그러나 새로운 아버지는 ‘믿음’을 부인한다. 그는 가혹한 상황으로 자식을 밀어 넣고 그들이 겨냥해야 할 적을 지정해주고 차갑고 피폐한 마음을 지니도록 가르친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성조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영리한 구도 속에서 은유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념이 다른 일련의 국가 체제를 ‘적’으로 규정했던 냉전 시대 스릴러 영화와는 달리, <리크루트>에는 뚜렷한 외부의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적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오히려 같은 목적으로 모인 내부자끼리 의심하고, 뒤를 캐고, 총격을 벌인다. 그리고 결국 영화의 표적이 되는 사람은 그 모든 상황을 조종한 ‘아버지’이다.
결말 부분에서 ‘아버지’는 대의를 믿지 않는다고 실토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받들었던 자식들은 아버지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하지만 변절자를 체포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했음에도 엔딩의 표정은 어딘지 찝찝한 구석이 있다. 세상의 법이었던 아버지마저 명분을 잃어버린, 믿고 따를 수 있는 그 누군가도 없는, 더 이상 적이 없음에도 사회의 관성적인 결속을 위하여 적을 제시해야만 불안을 덜 수 있는 현재 미국의 혼란과 공포를 이 영화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