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철저하게 대중에게 복무하게끔 체계가 잡혀 온 매체이다. 또는 그 역도 성립된다. 그러기에 영화는 21세기의 들머리인 작금의 시대에 문화의 총아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복무라는 행위가 대중을 늘 즐겁게 하는‘재미’에게만 받들어져 모셔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대중인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반대편에 위치해 또는 머리 꼭대기에 앉아 끊임없이 보는 이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하는 게 영화다. 따라서 오늘은 그러한 고약한 심성을 지닌 영화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눈 내리깔고 관장하는 듯한 작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피아니스트>의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1997년도 작 <퍼니 게임>. 영화는 실타래처럼 복잡다단한 욕망의 구조 속에서 기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피아노 교사 에리카의 삶을 슬프면서도 불쾌하게끔 전달해준 <피아니스트>보다 더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좀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영화 보는 동안 어찌할 도리 없이 입에서 육두문자가 저절로 나오게끔 우리들을 미치고 폴짝 뛰게 만든다.
하지만 청년들은 곱게 가지 않고 달걀을 일부러 깨트리며 서서히 자신들의 본심을 노골적으로 가족을 향해 노출시킨다. 드디어 그들은 남편의 다리를 골프채로 가격, 부러뜨리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열통 터지게 가족들을 향해 때로는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를 응시하며 저열한 미소를 천연덕스럽게 내비친다. 그러고는 내일 오전까지 이 세 명의 가족을 몰살시키겠노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 건네며, 천인공노할 이 게임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채근한다. 심지어는 윙크까지 해대면서.
이처럼 말도 안 되고 이야기라 할 수도 없는 두 미친놈의 엽기 행각만을 그린 <퍼니 게임>은 일상 안에 내재화되어 있는 폭력을 극단적으로 풀어놓은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들이 어떤 식으로 폭력을 특화시켜 보는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내보이는지도 <퍼니 게임>은 범상치 않은, 시쳇말로 골 때리는 방법을 통해 드러낸다.
<퍼니 게임>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고, 열 딱지가 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가 그간 보아왔던 방식의 모든 관습을 영화는 가차 없이 발로 차 버린다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지옥도와 같은 상황을 속절없이 지켜만 봐야한다. 곧, 본의 아니게 우리 역시 그들의 반인륜적 행위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방관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아니라고?? 과연, 자신 있게 목에 핏대 올려 가며 일갈할 수 있을까? 정말 아니라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폭력 사태가 이다지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꼭 한 번 보시길 바란다. 영화라는 매체가 달콤하기는커녕 토악질이 날 정도로 이토록 속을 메스껍고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끔 하는 영화도 흔치 않으니 말이다. 때로는 불편함이 약이 되는 게 세상이고, 달콤함은 팝콘으로 만족해야 할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