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울지 않는다>은 관객에게 충격과 고통을 주는 영화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올때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쎄지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리얼리티에 충실한 내러티브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관객들은 스릴러를 보는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관객들은 브랜든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언제 탄로가 날 것인가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다. 더욱 라나와 사랑이 무르익을 때 쯤해서는 그 긴장감이 고조된다.
<소년은...>은 사실을 기초로 만들어진 리얼리즘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리얼리즘은 '삶은 이렇다'라는 것을 단순히 보여주는 리얼리즘은 아니다. 리얼리즘 미학은 리얼리즘적 담론이 어떤 진실을 억압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진실을 생산하기도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리얼리즘 미학은 영화적 매개를 통해 생산하는 현실효과를 인식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은 <자전거 도둑>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오발탄>의 리얼리즘과 닿아있다. 몽환적 분위기를 내는 촬영은 브랜든이 도피하고자 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마치 <천상의 피조물(Heavenly Creatures/피터 잭슨)>에서 주인공들이 환상속에서 보는 잔인한 동화의 모습처럼 브랜든의 환영이 보여진다. 스스로 남자가 되고자 했고, 그를 사랑하던 여자들에 의해서 남자가 되었던 브랜든은 실상 자신은 그 무엇도 아닌,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은 환상속의 삶을 산다. 티나 브랜든은 브랜든 티나가 되고 싶었고 그건 곧 성공할 것 같은 신기루였다. 바지주머니에 양말을 뭉쳐 넣어서 남자의 성기를 만들고 머리를 자르고 남자들의 어리석은 힘자랑에 나서면서 스스로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싸움을 하고 도망을 다니고 얻어 맞으면서 브랜든은 사랑를 얻기를 원한다. 현실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의 환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면 그 진실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보자. 왜 브렌든은 살해당했나? 그를 살해한 톰과 존은 무엇 때문에 그를 죽이게 된걸까? 그들은 남성중심적 우월감이 남장을 한 그녀에 의해서 모욕받았다고 느꼈다. 근육을 드러내고 헛된 묘기를 부리는 것은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수컷의 몸짓이다. 그것이 무너져버리면 크게 상처받고 증오심을 가지게 된다. 브랜든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그는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안다. 그것은 그의 본능적 몸짓이다. 이러한 것들이 톰과 존에게서는 볼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고 그것이 그들의 증오심을 부채질한 원인 이다. 강간을 당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도 브랜든의 표정은 내가 왜 여기 있는거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빨리 이 순간이 지났으면...하는 눈빛을 보인다. 그래서 강간을 당한 직후에도 그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오히려 웃고 용서를 구한다. 그는 이 상황을 지우고 잊으려고 애쓴다. 그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 그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몸부림처럼...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아무도 톰과 존을 말릴 수 없었고 브랜든은 스스로 죽음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브랜든이 사랑한 라나는 어떤 여성인가? 불안한 현실을 담배와 술로 힘들게 보내던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준 브랜든을 그녀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꾸던 꿈은 '그녀와 함께'로 바뀌고 새로움은 공포로 다가온다. 두려워하는 라나의 모습은 톰과 존의 총기살인을 결국 막지못한다.
결국 브랜든의 죽음에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티나는 자신의 타고난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호함은 브랜든을 만들었다. 자신이 남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가 항상 들고 다니는 성전환수술 안내서에서 발견한다. 돈을 모으면 그는 간단하게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브랜든의 모호한 성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병자이고,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 세상에는 여자와 남자가 있고, 그 두가지 분류를 벗어난 소수자들은 예전에도 지금도 인정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등을 나누는 흑백의 논리는 아직 이 사회에서 만연해 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겁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류하고, 멀리하고, 학대하고, 멸시하는 것은 내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자유로운 정체성을 인정한다면 브랜든은 죽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소년은...>은 여러 면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이다. 관객을 휘어잡는 힐러리 스왱크의 연기는 물론이고 라나와 톰, 존을 맡은 조연들의 연기도 빛난다. 하지만 가장 박수를 많이 받아야 할 사람은 티나브랜든의 잊혀질 뻔한 죽음을 부활시킨 감독이다. 무엇이 진실인가, 아닌가를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브랜든을 이해하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제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주어지는 숙제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 1)[영화사전(이론과 비평)/수잔 헤이워드/한나래]중 리얼리즘에서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