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지난해 부천 국체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검은 물 밑에서>라고 대답하곤 한다. 물론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영화들 중에서 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링>, <여우령> 등 일본 공포 영화의 거장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최근작 이라는 사실에 더해 스즈키 코지의 원작 소설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은 영화를 보기도 전에 한껏 기대를 하게 만들었고 자칫 지나친 기대로 인한 실망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더 큰 만족이 되어 극장문을 나서게 했다.
이혼 소송을 진행중인 모녀가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사람들도 거의 살지 않고 분위기는 어쩐지 금방이라도 삐그덕 소리와 함께 귀신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했던 모녀는 부족한 환경을 나름대로 정돈하고 가꾸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들에게 윗층에서 자꾸만 천정으로 물이 스며든다. 검고 어두운 얼룩은 어느새 방 한가운데에 물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얽혀진 비밀과 모녀 사이에 어떤 스산한 기운에 섞여들기 시작한다.
영화는 누가 귀신이고 왜 귀신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인 지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평이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끊임 없이 삐그덕 거리는 효과음과 더불어 잿빛 가득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평범한 이야기의 전개가 오히려 더 진짜가 같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치 옆집에도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윗집에도 귀신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스산함이 못 덜미를 핥고 지나는 느낌이랄까. 그런 리얼한 공포가 <검은 물 밑에서>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종반부에 이르러 역동적인 장면들이 섞여 들면서 순간적으로 몰아쳐짐을 느끼는 순간에는 숨이 턱턱 막히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리는 충격을 견뎌내야 할 정도가 된다.
이 작품이 더욱 큰 재미를 주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에 보여지는 어머니의 희생으로 인한 감동과 슬픔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딸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선택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딸의 눈물. 그 모든 것들이 공포의 잔상이 가시기 전에 다가와 다시 한번 가슴을 울컥 하게 만든 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이 밝아져 온다. 복잡 다단한 감정을 추스르다 보면, 다시금 작품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왜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 될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원작 소설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여름에 개봉했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검은 물 밑에서>는 동양적인 공포와 정서가 제대로 살아 있는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호러 영화다. 스즈키 코지의 원작소설은 “어두 컴컴한 물 밑에서”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 되었으며, 상당히 간결한 내용의 단편집으로 묶여있어 관심이 가는 이들이라면 책 또한 살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