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재작년 부천에서였다. 등줄기를 쿡쿡 찌르는 따가운 여름 햇살에 쫓겨 부리나케 들어선 극장에서 봤던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우리 나라 DVD 출시명은 <아멜리에2>지만 이 영화, <아멜리에>와는 아무 관련 없다). 예기치 못한 일로 뚝 부러진 코에 큼지막한 반창고를 붙이고 등장한 그녀는, 마냥 곱기만 한 여느 멜로 여주인공과는 분명 달라 인상에 뜨겁게 박혔다. 연달아 <아멜리에>를 봤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될 성 부른 떡잎 한 장을 발견한 기쁨 때문이었다.
번쩍번쩍 잘 닦인 숟가락을 하나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 오묘한 미소로 신비로운 초록빛 후광을 마구마구 뿜어내던 포스터 속의 그녀는 바로, 오드리 또뚜. 그녀는 <아멜리에>에서 엉뚱하고 깜찍한 몽상가 처녀의 역할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는 그녀가 주연한 영화 두 편이 더 들어왔다. <좋은 걸 어떡해>와 <히 러브스 미>.
서론이 길었다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이 영화, 오드리 또뚜가 그렇고 그런 다소곳 여배우가 아닌 것처럼 고만고만한 멜로는 아니다. 그녀가 애인에게 선물할 장미꽃 한 송이를 고르는 예쁘장한 첫 장면에 속지 말지어다. 당분간 이어지는 발랄한 로맨스 템포 또한 눈속임. 자세히 보면 카메라는 지나칠 정도로 그녀의 편만 들고 있다. 그러므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이야기의 균열을 캐치하라.
<히 러브스 미>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나 <오! 수정>에서 사용되었던 ‘남녀간 입장 서술 병치’ 구조를 갖고 있다. 오드리가 살풋살풋 웃으며 당신의 눈을 아무리 현혹시킨다고 해도 상대편 남성의 사연을 들어보기 전에는 ‘솔깃’하지 않는 것이 후에 당신에게 일어날 심리적 충격을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거 다 알고 가면 재미없잖아, 라고 항의하는 당신, 그렇다면 오드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실을 추리해 봄은 어떨는지.
이 영화가 한 여성의 한 남성에 대한 감정(어쩌면 사랑이라 오해될 수 있는 종류의)을 몰아가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녀가 예전에 길렀던 고양이에 대한 일화라든지, 어떤 순간 조명을 이용해 그녀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등 몇 가지 단서를 던져 주며 관객에게 게임을 제안하기도 한다. 중간에서 플롯을 한 번 뒤트는 영화에서 저지르기 쉬운 ‘앞 뒤 안 맞는’ 허점도 눈에 안 띄는 것을 보면 구성도 꽤 촘촘하다. 흔히 맞닥뜨릴 수 없는 영화 형식에 한 표를 주고 싶은 작품이지만 대중적인 감성에 호소하기에는 좀 생뚱맞은 면이 없지 않고 관객이 본격적으로 추리에 뛰어들기에는 게임이 좀 밋밋하다는 단점도 있다. 하긴, <엽기적인 그녀>도 성공했으니 프랑스판 엽기녀도 사랑 받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건 뱀다리, 개인적으로는 오드리 또뚜의 컬러풀한 패션과 알록달록한 배경이 어우러진 화려한 색감이 마음에 들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