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계약조건 변경하지 말 것. 둘째 거래는 익명으로 할 것. 셋째 절대 포장을 열지 말 것. 언뜻 고위층을 상대로 한 퀵 서비스 맨의 신조같이 보이는 이 규율은 놀랍게도 역시나 퀵 서비스 맨의 지맘대로 룰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배달하는 물건이 상당히 위험스러운 운송물이라는 것과 깜장 색 양복으로 의복을 갖췄다는 것. 그리고 서비스 맨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스마일 상실형 얼굴을 지녔다는 것이다.
<트랜스포터>는 뤽 베송이 각본과 제작을 맡고, 이연걸의 <영웅>과 <버추얼 웨폰>을 연출하고 <더 원>의 무술감독을 맡았던 원규가 감독을 한 다국적 스피드 액션 활극 영화이다. 여기에 가이 리치의 영화를 통해 영국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에서 배우로 변신한 제이슨 스태덤이 주인공으로 낙찰돼 가세한다. 물론, 다국적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대만 출신 여배우 서기도 공수해왔다.
<트랜스포터>의 압권은 극 초반 자동차 추격 신에 다 실려 있다고 보아도 된다. 해안의 도시 니스를 배경으로 벌이는 이들의 숨막히는 레이스는, 해변가는 물론 홍콩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꼬불꼬불 골목길을 아크로바틱하게 질주하며 펼쳐진다. 실례를 들어, 성룡 영화에 수 없이 등장했던 자동차 추격신보다 더 서커스틱하고 장쾌하다 할 수 있다.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듯한 이러한 스피드 한 장면과 프랭크가 액션을 선보일 때마다 같이 연동하여 노출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스탠리 클라크의 흥겨운 연주곡이다. 퓨전 재즈계의 독보적인 흑인 베이시스트인 클라크는, 그루브 한 휑키 음악을 영상 속에 미끄러트려 보냄으로써 영화 전반에 걸쳐 활력을 불어 넣는 사운드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을 넘어가면서 늘어진다. 스피드가 생명인 영화인데도 말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구멍이 너무 여기저기 보이는 시나리오에 있다. 그리고 주인공 남녀 역시 문제를 품고 있고. 프랭크로 분한 제이슨 스태덤의 경우, 차세대 액션 히어로로 추켜 주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는 배우이다. 그는 영화 내내 젠틀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단순한 모습을, 정말이지 연기하고 있다. 서기 역시 하는 것 없이 소리만 질러 대는 뽀빠이의 올리브적 역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신 그녀는, 좀더 짧은 치마와 상의 단추 몇 개를 풀어헤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 한 듯한 표정을 진다.
영화의 핵심이라 할 몸동작 또한 대중들의 시선을 포박하기에는 좀 약하고 밋밋하다. 물론, 예전 같으면 충분히 재미를 불러 모을 수 있었던 몸 액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할리우드로 진출한 정소동, 원화평. 이연걸. 견자단 등 중화권 무예인들의 놀라울 만한 성과로 인해, 웬만한 격투 장면으로는 변덕이 심한 관객의 발걸음을 묶어두기엔 힘들다. 결국, 뤽 베송은 이번에도 글러벌 한 영화를 생산해내는 데 있어 자신만의 확고한 자리를 꿰차지 못하고 엄청난 수업료만 지불한 채 끝을 맺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차라리,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적금을 붓다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사족
영화에 등장하는 프랭크의 밥벌이 수단인 차는 형형하게 BMW라고 적혀있다. 헌데, 필자가 얼마 전에 해외 기사를 통해 알려 준 바 있는 BMW회사의 온라인 광고 겸 단편 영화(가이 리치. 이안, 데이빗 핀처 등이 연출함)와 <트랜스포터>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BMW라는 차도 그러거니와 영화의 줄거리도 조금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혹, 무슨 관계가....이상 믿거나 말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