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고전적이면서도 왠지 어려운 느낌의 이 말을 동사로 쓰면 어떤 느낌일까? ‘클래식하다’. 일반적으로 ‘촌스럽다, 유치하다’ 같은 뜻이 연상되지만, 만약 당신이 영화 <클래식>을 보았다면 ‘클래식하다’는 말은 ‘풋풋하다, 순수하다, 애달프다’ 라는 뜻으로 다가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의 주역은? 바로 영화 <클래식>이 간직하고 있는 60년대의 따뜻한 웃음과 사랑, 그리고 눈물이다.
<엽기적인 그녀>로 전국에 ‘엽기녀’ 돌풍을 일궈냈던 곽재용 감독이 가지고 돌아온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이야기 <클래식>. 순수멜로를 표방하는 <클래식>은 과거 어머니의 사랑과 현재 딸의 사랑,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우연처럼 보이는 이 두 사랑이 필연으로 엮어져 있음을 풀어내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풋풋한 담론이다.
<클래식>은 곽재용 감독의 전작 <엽기적인 그녀>와 유사한 스토리 전개방식과 구도를 보여준다. 준하가 주희의 집 앞에서 가로등을 깜빡이며 기다리는 모습은 견우가 가로등이 켜져있는 엽기녀의 집 앞에서 그녀가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면과 겹쳐진다. 잘나가는 부잣집 딸이었던 엽기녀와 별 볼일 없던 견우처럼 공화당 의원의 딸인 주희와 준하 역시 극복하기 힘든 신분 혹은 빈부의 차이로 고통받는다. 전반부는 코믹이 강세였다가 중반부에서는 멜로 집중 성향을 보이고 후반부로 갈수록 비극으로 치닫는 구조도 흡사하다. 이런 단상들은 ‘소나기’에 집착하는 것처럼 감독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 슬픈 사랑에 대한 몽타쥬처럼 느껴진다. 설레이던 감정이 사랑이 되고 결국 아픔을 가져오는 것처럼. 매 장면마다 반복되는 ‘비’ 역시 그러하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마다 내리는 ‘비’는 사랑의 설레임과 기쁨, 슬픔과 아픔, 이 모든 감정이 교차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한 예로, 지혜와 상민이 빗속에서 도서관을 향해 뛰어가는 장면은 때마침 흐르는 노래와 함께 절묘하게 들어맞으며, 지혜의 기쁨과 관객들의 로맨틱한 감성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클래식>은 그저 아름답고 아련한 감성의 멜로영화일까. 사실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코믹영화를 버금가는 웃음들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특히 감칠맛나는 대사와 장면들이 곳곳에 자리잡은 초반과 중반부는 시종 관객들의 폭소를 자극한다. 주희를 만나고 돌아서던 준하가 기쁨에 겨워 펄쩍 뛰어오르다가 바닥에 넘어진 뒤 아무렇지 않은 듯 팔을 괴고 눕는 장면, 대변검사에 소똥을 가져다 낸 준하가 회충약을 32알 먹는 장면, 얌전하기만 한 주희가 엽기댄스를 선보이는 포크댄스장, 태수가 주희 바래다 준 뒤 나누는 마지막 인사 “수고하셨습니다.”까지. 귀신집에 들어간 준하가 주희를 겁주자, 겁먹은 주희의 ”아이..몰라.”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아쉽게도 곽재용 감독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클래식>을 통해 모두 해버리려는 과욕을 부린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클래식>은 그만 의욕과잉으로 불어난 몸집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살 미수와 학생운동, 월남전까지 넘나들다 보니 러닝타임은 결국 2시간 10분을 훌쩍 넘긴다. 배우들은 중년이 되어서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해 헤매이고, 결국 후반부에 너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거와 현재의 이음새는 오히려 관객들의 기대를 흐리게 한다. 겉모습은 17살 그대로인데 ‘많이 늙었지’라고 말하는 손예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색한 것처럼 말이다. 현재의 지혜가 짝사랑하는 ‘상민’ 역의 조인성도 주연이라고 하기에는 미숙한 연기와 비중으로 조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클래식>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못한 동화처럼 가슴에 아련한 슬픔을 주기에는 더없이 효과적이다. 결말로 갈수록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몰아가는 설정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우정을 위해 사랑의 징표인 목걸이를 두고 돌아서는 조승우가 눈물을 참으며 애써 웃음을 짓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첫사랑이 있었다면 그 사람을, 아직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그 누군가를 꿈꾸듯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 추구한 첫사랑의 감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