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신비한 전설인줄만 알았던 보물섬이 실존한다는 것을, 게다가 보물이 숨겨진 비밀장소까지 알게 된 한 겁없는 소년이 대해적이 숨겨둔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는 모험소설 <보물섬>을 기억하는가?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아슬아슬한 모험과 위기, 뜻밖의 우정까지 곁들이며 감칠맛나게 독자들을 책 속으로 빨아들였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이 우주공간에서 재탄생했다. ‘무인도’를 ‘우주 행성’으로 되살려낸 디즈니의 톡톡튀는 상상력의 산물 <보물성>은 <타임머신>의 시간 여행을 능가하는 초고속 우주 여행과 <인디아나 존스>식 액션과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솔라 보드를 타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인 문제아 짐 호킨스는 우연히 추락한 우주선에서 죽어가던 남자로부터 보물이 숨겨진 행성의 지도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어머니가 운영하던 벤보우 하숙집이 보물 지도를 쫓아온 해적들의 손에 불타게 되자 짐은 다소 어리버리한 과학박사 도플러 교수와 함께 보물을 찾기 위해 광활한 우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 배에는 그들의 뒤를 쫓아온 사이보그 해적 실버와 그의 부하들도 위장 탑승해 있었으니, 예상대로 보물을 찾아가는 짐의 앞날은 험난한 위기만이 가득하다.
무삭제판 <걸리버 여행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상상해봤을 법도 한 5차원적인 입체건물들이 그대로 재현된 우주항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날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영화 속 배경들은 마치 사진처럼 선명해 날이 갈수록 발전을 거듭하는 파워 2D, 3D 그리고 한단계 더 진보된 5D의 기술력을 실감하게 한다. 우주를 헤엄치는 우주 고래, 오시르 갈락시티의 단체 유영 역시 장관이다.
각종 동물(포유류, 조류, 어류, 갑각류 등등)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우주 생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꾸로 생각하면 가장 고전적인 진화설이지만 가장 논리적인 근거가 뒷받침하고 있어서인지, 인간과 거북이, 가재와 사마귀, 여우와 문어가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은 독특하면서도 친근하다. 디즈니 특유의 글로벌한 감성(우리는 하나~지구는 하나~)에 익숙해진 모양. 그러나 인종적인 편견을 극복하고(여자 선장!) 개성을 중시하고자 한 캐릭터들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애완생물(?) ‘모프’를 제외하고는 어린이들의 시선에 맞추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외모를 지니고 있어 아쉽다. 한마디로 아기자기하게 예쁜 맛이 없다는 것. 아무래도 <보물성>은 디즈니에게는 적지 않은 주요 부수입이 되는 캐릭터 사업 분야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 것 같다.
2D의 평면적인 느낌과 3D의 금속성의 냉기를 없애기 위해 이 둘을 결합, 2D로 표현된 캐릭터들과 달리 3D로 구축된 배경은 공간의 입체성을 두드러지게끔 하며 스크린의 색채감과 공간감각에 깊이를 더한다. <보물성>은 이렇게 진보된 CG를 적극 체험하게 해주는 반면, 원작 소설이 지닌 고전적 분위기를 한껏 살려 캐릭터들의 복장은 복고풍 스타일로, 우주선은 나무 범선으로, 우주항 역시 고기 비린내가 풍기는 바닷가 부두처럼 묘사하며, 클래식한 분위기를 물씬 살려내고자 한 것이 옅보인다. 꽤 정성스러운 퓨전 애니메이션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스타워즈>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우주 액션 애니메이션 <보물성>은 태풍 대신 블랙홀을 만나며 험난한 항해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여러가지 다양한 재미를 마련했지만, 문제만 일으키던 반항아 소년이 목숨을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문제아 어른 되기’ 성장드라마의 보수적인 기본틀을 유지한 탓에 새로운 재미는 주지 못한다. 지나치게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립이나 이야기 전개 등 구성 역시 너무 천편일률적이어서 성인 관객에게는 어필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화려해지고 복잡해진 액션이 가득한,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밀려난 화면은 진보된 5D의 기술력은 전혀 개념치 않는 무심한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던 월트 디즈니, 오락성과 작품성을 확보하려 한 그들의 전략적인 기획 애니메이션을 향한 항해는 <보물성>에서 잠시 길을 잃은 듯 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스코트처럼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가득찬 ‘보물성’ 이기에 이들 역시 이 험난한 항해를 무사히 뚫고 지나가 그들만의 보물섬에 다다를 것이라 믿고 싶다.